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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과 미국의 책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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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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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익선 / 원광대학교 정역원 교무

   
 

지난 며칠간 학도의 자세로 제주도를 둘러보는 내내 통한의 역사에 눈물만 흘렸다. 고은 시인이 <만인보> ‘오라리’에서 “총소리 뒤 제주도 가마귀들 어디로 갔는지 통 모르겠다”고 했는데, 우리가 간 날은 4·3평화공원에 모여 있었다. 특별전시관에서 동굴을 지나 마주친,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채 누워 있는 하얀 비석은 충격이었다. 2000년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에 진상보고서가 확정되었음에도 그 이름을 아직도 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 해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권력의 과오를 이곳 제주에서 정식으로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어 2005년에 제주도는 정부에 의해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되었다. 노 대통령은 “제주도는 4·3이라는 역사적 아픔을 딛고, 과거사 정리의 보편적 기준인 진실과 화해의 과정을 거쳐 극복해 나가는 모범을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보듯이 사건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그것은 70년이 흐른 지금도 이 고통이 진행형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미국이 있다. 어릴 때, 미국은 왜 자신과 전쟁을 치른 일본을 독일처럼 분단시키지 않고 한반도를 남북으로 나누었을까를 줄곧 생각했다. 커서야 그것이 미국의 아시아 전략임을 알게 되었다. 한국 백성은 당연히 독자적인 국가를 세울 주인임에도 객인 미국은 냉전의 시작인 소련과의 대결을 위해 한반도를 점령했다. 미국은 해방이 되자마자 정통성을 가진 중국 내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정부’를 세웠다. 그리고 한국인이 결정하지 않은 법을 제정하여 3년 동안 이 나라를 통치했다. 이 시기에 한국의 현대사가 결정된 것이다. 1948년 8월15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과 그와 관련된 미군정의 역사에 대한 단호한 평가를 내리지 못해서 제주도의 비극을 명명(命名)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한반도 점령 정당화를 위해 제주도에서 백성의 일부를 ‘빨갱이’로 지목하고, 또 다른 제국의 힘을 보여주었다. 이승만의 단독정부는 정권의 취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이러한 색깔의 공포정치를 극대화했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또한 이 색깔론으로 국민을 지배했다.

군 복무 시 휴전선에 배치되었을 때, 나는 맨 먼저 북한의 병사들을 망원경으로 보고 싶었다. 진짜 빨갛게 생긴 인종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 같은 남북 해빙 영화를 통해 우리와 같은 말을 하는 동포임을 확인했다. 교육으로 물들여진 두려움의 심리를 고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이 빨갱이가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묻고 싶다. 정치적이라고 해서 가해자가 명백한 사건에 이름을 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공자가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한 것은 불의는 불의로 보고, 정의는 정의로 보겠다고 한 것이 아닌가. 계급, 집단, 민족 또는 국가 간 최초의 원한을 풀어야 상극이 멈추고 상생이 이루어진다는 해원(解怨)사상 또한 원점에서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근현대사에 직접 관여한 미국의 역할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역사는 상대적인 힘의 세계를 보여준다. 미국은, 적의 위협은 나의 안전을 해친다는 자신만의 정당성을 확보하며 약한 주변을 도구화시켜 왔다. 그렇다고 1905년 일본의 총리 가쓰라 다로와 미국의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가 조선과 필리핀의 지배권을 서로 인정한 밀약의 원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원죄는 해방정국에 무단침입한 미국의 죄를 낳고, 제주도의 고통을 낳았으며, 여전히 남북을 좌지우지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은 평택 대추리의 미군기지,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성주 소성리의 사드 배치가 보여주고 있듯이 4·3의 역사처럼 아래로 작용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은 물론 국가의 법은 훼손되고, 국민은 혈세 투입을 바라보아야만 하며, 삶의 터전이 짓밟히는 것에 대한 결사반대는 오히려 소외로 되돌아온다. 6·25전쟁 직후 예비검속된 백성의 대량학살이 자행된 제주 섯알오름의 푯말에 기록된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총살당한 수백명의 시신이 한 웅덩이에 엉켜 있던 참혹한 모습을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외세에 짓눌려 자행된 동족상잔의 이 비극들을 끝낼 수 있을까. 그리고 미국은 이 비극의 역사를 초래한 책임을 지고 우리에게 진정으로 사죄한 적이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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