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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위의 조선인 戰犯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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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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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휘 / 도쿄 특파원

"숨진 동료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원통함을 풀기 전에는 죽을 수 없다."

   
 

지난달 중순 일본의 정치 1번지 나가타초에서 열린 '조선인 B·C급 전범(戰犯)' 관련 집회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다. 일본 패전 후 열린 연합군 재판에서 B·C급 전범이 된 당시 조선인들에 대한 보상과 명예 회복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태평양전쟁 때 강제 동원돼 포로 감시원 등으로 투입됐던 조선인 3000명 중 148명이 전범이 됐고, 이 중 23명이 교수형이나 총살형을 당했다.

목소리 주인공은 포로 감시원으로 동원됐다가 전범이 된 재일 한국인 이학래(92)씨. 종전 후 11년간 구금됐다가 1956년 석방된 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조선인 전범 출신 모임인 동진회(同進會)에서 60년 넘게 활동했고, 지금은 대표도 맡고 있다. 언제나 집회 현장에 나왔던 그였지만, 이번엔 못 나오고 영상물에 등장해 목소리를 냈다. 사정을 알아보니 건강 악화로 심장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있었다.

조선인 전범은 흔히 '한·일 양국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일본군 군속으로 전쟁에 끌려갔을 때는 군견(軍犬)보다 못한 존재로 무시당했다고 한다. 광복 후에는 전범으로 낙인찍혀 감옥 생활을 했다. '식민지 출신자는 일본 국적을 잃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1952년)이 발효되자, 일본 정부는 이 조항을 내세워 조선인 전범들에 대한 보상을 거부했다. 고국에서는 해방 후 60년 넘게 '일제 앞잡이' 취급을 받았다. 지난 2006년 한국 정부가 이들을 '강제 동원에 의한 전쟁 피해자'로 인정해 뒤늦게 명예가 회복됐다.

그러나 일본에선 여전히 전범이다. 명예 회복을 위해 지난 1991년 조선인 전범 피해자 7명이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져야 할 전쟁 책임을 대신했다"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경제협력협정으로 한일 양국 간에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했고, 일본 법원은 이를 근거로 일본 정부 손을 들어줬다. 작년에는 일본의 일부 국회의원이 이들의 보상에 관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11월 초 조선일보 도쿄 지국 앞에서 '외국 국적 B·C급 전범 기억전'이 열렸다. 그곳에서도 "내가 정말 전범인지 조국과 일본에 묻고 싶다"는 한 조선인 전범의 녹음된 육성 유언이 울려 퍼졌다. 10년 넘게 전시회를 열어 온 일본인 단체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 관계자는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관심을 가져봐야 소용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더 늦기 전에 우리 정부와 국민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정부가 전쟁 피해자로 규정한 것만으로는 절반의 명예 회복에 불과해 보였다. 1955년 동진회를 만든 조선인 전범 출신 70명 중 병석에 누워 있는 이씨를 포함해 단 3명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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