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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작가의 소설 '파친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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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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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국빈방문한 미국 대통령의 공식만찬 메뉴로 ‘독도새우’가 올라가고, 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가 만찬 초대 손님에 포함됐다. 일부 일본 언론은 물론, 일본 외무성까지 나서 이를 둘러싸고 잡음을 내고 있다. 전혀 생소하지 않은 한·일 관계의 불편한 현주소다. 여기에 미국이 끼어들면 관계가 복잡해진다. 한국과 일본의 오랜 악연이 낳은 이 복잡한 3차 방정식을 미국인들은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의 아시아 순방이 끝나가는 지난 주말(11일자) 재미교포 1.5세 작가 이민진(48)의 소설 '파친코'가 뉴욕타임스 북리뷰에 소개된 것은 우연일게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올해의 책(내셔널 북 어워드)’ 후보에 오른 것을 계기로 새삼 <파친코>가 담아 낸 자이니치 문제를 조명했다. 한 면을 헐었다. 이미 영미권에서 올해의 주요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면서 발견되는 ‘다름’은 때로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 ‘다름’이 단순히 이국적인 특성에 그치지 않고 차별적인 색조를 띤다면 호기심은 더 깊어질 조건을 갖춘다. 작가 이민진은 7세 때 가족과 함께 뉴욕 퀸스로 이주, 맨해튼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에게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은 열심히 일하고, 사회적, 경제적 상승 욕망이 높은 사람들로 이해됐다. 그런데 같은 한국인 이주자인데 왜 자이니치(재일동포)는 다를까. 작가가 자이니치의 존재 자체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생이던 1989년이라고 한다. 일본에서 자이니치들을 만났던 개신교 선교사로부터였다. 상승욕구가 강한 재미동포들과 달리 많은 자이니치들이 일본 사회경제적 사다리의 아래 쪽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호기심의 씨를 뿌리게 됐다.

세자매 중 둘째인 작가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화장품회사 영업사원 출신이었다. 많은 이민자들처럼 전쟁 공포 탓에 1970년대 중반 이민을 결행했다. 맨해튼에서 신문판매대를 시작한 것이 첫 직업. 이후 옷과 액서사리를 파는 가게를 열어 세 딸을 대학에 보냈다. 작가는 예일대를 거쳐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로 몇년 간 일했다. 하지만 고교시절부터 재능을 보였던 글쓰는 일로 복귀했다. 일본계 미국인인 남편을 만난 것이 자이니치에 대한 호기심을 직접 탐사할 기회를 제공했다. 남편이 2007년 도쿄의 금융회사에 근무하게 된 덕분이다.

작가는 파친코 업자들과 술집 여종업원 등 자이니치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채집할 수있었다. 처음엔 접근하기 어줍잖았지만 머지않아 수문이 열리듯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많은 이야기들은 러브스토리였다. 작가가 만난 모든 자이니치들은 인종 탓에 한번쯤 거부당했던 경험을 갖고 있었다. 미국 역시 인종의 간격을 메우지 못한 나라다. 하지만 아메리칸 드림을 좇고 많은 경우 꿈을 실현하는 재미동포들과 달리 자이니치는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인종적 다름에 포획된 사람들이었다.

파친코는 자이니치들에게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있는 기회였다. 수백만명의 일본인들은 담배연기로 가득찬 홀에서 파친코에 열중한다. 파친코는 법적으로 회색지대이기도 하다. 일본 정부는 게임은 허용하되 도박은 불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많은 자이니치들이 선택한 파친코 업자라는 직업을 경멸하는 시선이 생긴 연유다. 채집한 이야기가 늘어가면서 소설의 윤곽도 잡혔다.

작가는 일본 체류 중 ‘미국인’이었기에 일본 사회에 팽배한 자이니치에 대한 편견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결코 핏줄의 다름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도쿄 아파트의 수리공사가 조잡하게 돼자 항의를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당신들 한국인은 늘 불평만 한다”는 말을 관리사무소 직원으로부터 들어야 했다. 교회 무료급식소에서 카레를 요리한 노숙자 자원봉사자에게 대가를 지급하자는 주장을 하자 한 일본인 신자는 작가의 ‘한국인의 피’ 탓에 야단법석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10년 전 그의 첫 소설 '백만장자…'와 마찬가지로 올해 초 발간한 '파친코'는 미국, 영국, 호주, 아일랜드 등 영어권 주류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터키와 폴란드에서도 판매된다. 자이니치 문제는 일본 내에서도 낯선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최근 일본을 찾았을 때 '파친코'를 유독 도쿄에서는 찾을 수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나는 일본을 사랑한다. 하지만 한국인이기에 복잡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이어 “한 나라의 힘은 과거에 대해 투명하게 말할 수 있을 때 드러난다”고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평범한 미국인에게 한국과 일본의 일그러진 관계에 대해 설명을 하기는 쉽지 않다. 걸핏하면 “너무 일본을 나쁘게만 보지 마라”는 핀잔을 듣기 마련이다. 역대 미국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관계가 좋아지길 바랬다. 지금도 그렇다. 한국과 일본을 묶어서 아시아 전략을 짜는 것이 실용적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한·일 관계를 이해시키는 것은 녹록지 않다. 이민진의 '파친코'가 주목을 받을수록 한·일 간의 해묵은 관계를 이해하는 미국인이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한국인의 전쟁공포를 전한 소설가 한강의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 이 그랬듯이, 작가의 글은 늘 힘이 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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