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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노동국 설립해 취업 알선에 나서도산 공화국 <5>
장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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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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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

파차파 캠프의 정확한 위치

   
 

1904년 도산 안창호가 리버사이드로 이주하면서 그의 리더십으로 한인타운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파차파 애비뉴(Pachappa Avenue)이다. 한인 집단 거주 지역이었던 리버사이드 한인타운을 사람들은 '파차파 캠프' 또는 '안도산 공화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첫번째 이름은 당시 미국인 소유주로부터 총 2.96 에이커의 땅을 임대해서 17개 동을 지어 모여 살았던 한인 집단 거주지의 주소가 1532 파차파 애비뉴(1532 Pachappa Avenue)였기 때문에 지어졌다. 두번째 이름은 1911년에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회장이었던 강명화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한인공동체가 도산의 지도력에 힘입어 훌륭한 민족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동해서 붙인 것이다.

   
▲ 리버사이드 오렌지 농장에서 한인 노동자들은 매우 인기가 있었다. 임금이 싸고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들의 취업을 알선하는 기관이 도산 안창호에 의해서 설립됐다. 노동자들과 도산(앞줄 왼쪽에서 3번째)의 모습.

그런데 1911년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 회장은 강명화가 아니라 최정익으로 밝혀졌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최정익도 1911년 11월 리버사이드에서 열린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최정익이 도산 공화국이라고 했을 가능성은 높다.

이선주는 민병용의 '미주한인 100년―초기 인맥을 캐다'를 인용하여 "파차파 애비뉴(Pachappa Avenue)가 커머스 스트리트(Commerce Street)로 바뀌었는데 현재 바뀐 주소는 4430 커머스 스트리트(4430 Commerce Street)"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리버사이드 시의 역사보존 팀의 도시계획 부 설계사인 스콧 왓슨에게 확인해 본 결과, 현재의 정확한 주소는 3096 코티지 스트리트(3096 Cottage Street)로 밝혀졌다. 원래 주소인 1532 파차파 애비뉴(1532 Pachappa Avenue)는 1932년에 4532 파차파 애비뉴(4532 Pachappa Avenue)로 바뀌었고 1952년에는 길 이름이 바뀌어 4532 커머스 스트리트(4532 Commerce Street)가 되었다.

한인노동자 오렌지 농장에 소개 

리버사이드 이주자 늘리는 계기

파차파 캠프 주소지 3번 바뀌어

20개의 목조 건물로 열악한 환경

후에 남가주 개스 회사가 그 근처 토지를 전부 매입하여 건물을 지으면서 주소가 3096 코티지 스트리트(3096 Cottage Street)로 통합된 것이다. 따라서 아쉽게도 초기의 모습은 전혀 보존되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 파차파 캠프의 정확한 위치와 주소를 밝혀낸 것도 큰 성과다.

1908년 뉴욕의 산본 회사에서 제작한 리버사이드 보험 지도에는 파차파 캠프를 '한인 거주지(Korean Settlement)'로 표기했다. 당시 한인타운에서 거주했던 백광선 (Mary Paik Le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지어진 약 스무 개의 목조 건물은 모두 1층 건물이다. 그리고 커뮤니티 센터와 두 세대용 건물은 1.5층이다. 대부분의 목조 건물은 직사각형이며 3개의 건물은 정사각형, 또 다른 건물은 L자 모양이다. 모두 한 개씩의 창문이 있다. 다섯 개는 창문 가리개가 있으며 열두 개는 타일로 만든 굴뚝이 있다. 두 개의 건물에는 스토브 파이프가 있지만 다른 두 개의 건물에는 굴뚝이 없다."

이 목조 건물들은 일종의 판자촌과 같은 열악한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지역에 한인들이 1904년부터 거주하기 시작했고 1930년대에는 멕시칸 거주 지역으로 바뀌었다. 차의석도 "이곳 남가주는 날씨가 화창하고 주변에는 오렌지 농장과 옛 친구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했고 편안했다 … 빨간색의 오두막들로 둘러싸인 이곳은 14번 가와 철로 사이에 위치해 있다"라고 회상하였다.

한인 노동국 (Korean Labor Bureau)

당시 캘리포니아 주 농장주들은 대부분 노동 알선사를 통해 노동자들을 구했는데 당시에는 일본계가 거의 모든 노동 알선사를 독점하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샌프란시스코나 시애틀로 이주한 일본 노동자들에게 일본계 노동 알선사들이 숙식을 제공했고 취업도 시켜주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일본 노동자들로부터 숙식비와 취업 비용을 청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통역비 등 여러 서비스 제공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여 이중으로 이윤을 추구했다. 일본계 노동 알선사와 이민 노동자들은 일종의 갑과 을의 관계로 일본 노동자들이 같은 민족인 일본계 노동 알선사들로부터 각종 착취를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 노동 알선사는 일본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집단이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그들을 상대로 제대로 항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또한 일본 노동 알선사들은 주로 일본인 노동자들에게만 취업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에 한인들은 차별을 당해 구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오렌지 농장주들은 백인 노동자보다 아시안 노동자들을 선호했는데 그 이유는 아시안 노동자들의 임금이 싸고 그들이 더 열심히 일을 했고 긴 시간 일을 해도 불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오렌지를 따는 도산의 모습.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도산 안창호는 '한인 노동국(Korean Labor Bureau)'을 창립하여 한인들에게 취업의 문호를 열어 주었다. 이로 인해 타지역의 한인들이 리버사이드로 이주해 오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다. 1905년 4월 한인 노동국의 주소는 127 코티지 스트리트(127 Cottage Street, 현재는 3065 Cottage Street)였다.

'리버사이드 데일리 프레스' 신문 광고에 '한인 직업소개소(Korean Employment Bureau) 오렌지 수확 노동자(Orange Picker)'라는 제목으로 파트 타임으로 집안 일을 할 사람과 노동자를 제공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신문의 11월 광고에는 '한인 노동국(Korean Labor Bureau)'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광고 내용도 파트 타임으로 제공할 수 있는 노동자의 종류가 오렌지 수확 노동자, 정원사 등으로 다양화되고 구체화되었다. 주소도 근처의 큰 빌딩으로, 바로 파차파 캠프로 알려진 1532 파차파 에비뉴로 바뀌었다.

1905년 한인 노동국이 설립되면서 많은 한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리버사이드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한인 노동국 설립 배경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도산 안창호는 리버사이드로 이주한 후 코넬리어스 럼지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고 그와 친분을 쌓게 된다. 럼지는 알타 크레스타 그로브(Alta Cresta Grove) 농장을 운영했는데 그가 선뜻 1500달러를 빌려 주어서 안창호가 한인 노동국을 설립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엘렌 전은 오렌지 농장 주인이 한인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교회로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해 주었다고 쓰고 있다.

"한인 노동자들과 농장주는 서로 잘 지내는 관계였지만 저녁을 초대해 주는 것은 잘 없는 일이기에 한인 노동자들은 그 이유를 궁금해 했다. 농장 주인은 한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농장에서 오렌지 수확하는 일을 시작한 후부터 매년 이득이 늘었기 때문에 감사의 답례로 저녁에 초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녁 식사 후 갈보리 장로교회 목사가 일어나서 참석자 전원에게 성경과 찬송가 서적을 주었다. 안창호는 주빈석에 앉아 있었는데 흐믓하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평소 안창호는 웃지 않는 편이다). 안창호는 한인들에게 '내 것을 딴다고 생각하면서 오렌지를 정성껏 따라'고 했는데 농장주 역시 '여러분들은 마치 자신의 나무라고 생각하면서 정성껏 오렌지를 수확해 주었다'고 감사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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