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철 / 샌프란시스코 특파원

"페이스북의 인공지능(AI) 개발 인력 중 절반 이상이 중국계입니다. 워낙 중국인 직원이 많다 보니 영어 대신 중국어로 의사소통하는 일이 잦아 회사가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과 만난 자리에서 들은 얘기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기업인 페이스북에서 AI·머신러닝(기계 학습) 같은 첨단 기술 개발 주인공 대부분이 중국계이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어디를 가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고 넘쳐나는 게 중국계 엔지니어와 연구원이다.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 임직원 중 중국 칭화대·베이징대를 졸업한 중국인은 각각 수백 명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명문 대학 해당 학과 졸업생 숫자와 맞먹는다. 이들은 AI·자율주행차 같은 미래 기술 개발의 선봉 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리콘밸리에서 제대로 사업하려면 중국어를 배워 잘 구사해야 한다"는 게 성공의 불문율(不文律)처럼 되고 있다.

이런 모습은 텐센트·화웨이·알리바바·바이두 같은 중국 대기업의 전략적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계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들이 막대한 투자금을 유치해가며 실리콘밸리로 진출해 몸집을 불리며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리콘밸리의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질적(質的) 측면은 고사하고 양적(量的)으로도 한국·중국 간 인재 격차가 하늘과 땅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오히려 실리콘밸리로의 인재 유출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해부터 서울대 공대 대학원생 일부가 구글·페이스북 등에 스카우트돼 한국을 떠난 것에 대해 '두뇌 공동화(空洞化)'를 우려하는 게 대표적이다. 한국의 우수 인재가 해외로 떠나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인재의 실리콘밸리행(行)이 과연 두뇌 공동화일까. 중국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스탠퍼드와 구글의 인공지능 개발 총괄을 담당하다 중국행을 택했던 앤드루 응, MS에서 검색과 메신저 사업 등을 총괄하다 중국으로 돌아간 치루 바이두 부회장 등은 미국 경험과 인맥을 바탕으로 중국 IT 산업의 급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인재는 큰물에서 자라야 더 크게 된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인재가 해외로 나가는 걸 두려워 말고 해외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성장한 고급 인재들을 어떻게 다시 유치할지 고민해야 한다. 설익은 인재를 한국에 억지로 가둬두는 것보다 '한국의 앤드루 응' '한국의 치루' 같은 성공 사례가 많도록 하는 게 한국 경제에 진짜 유익한 보약(補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