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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연관현악단의 강릉 공연을 보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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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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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선 /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 연구교수

북한 예술단의 최정예 연주자·가수
공식무대서 남한 가요 연주는 처음
'J에게' 등 남한 가요 13곡 파격 선곡
클래식·미국 민요 즐기는 레퍼토리
정치적 장면 배제 등 애쓴 흔적 역력

   
 

8일 오후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의 첫 공연을 관람했다. 북한 예술단의 방한은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8·15민족통일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삼지연관현악단은 특별 편성된 예술단이다. 삼지연악단, 모란봉악단, 청봉악단, 조선국립교향악단, 만수대예술단, 국가공훈합창단 등 6~7개 예술단의 최정예 연주자와 가수가 단원으로 포함됐다. 북한에서 예술단은 모두 국가 체제 소속이기에 단원의 이동과 결합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해외공연이나 특별공연을 위해서 편성되는 경우는 다반사이다.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은 서곡, 본 공연, 종곡으로 구성됐다. 북한의 전형적인 종합무대 공연 형식이었다. 관현악단의 구성이 아니면 소화할 수 없는 종합무대 공연 구성이기도 했다. 남한 가요를 13곡이나 연주하는 등 파격적인 선곡만 빼고 나면 무대와 조명 등에서 요즘 북한의 음악공연 무대를 옮겨놓은 것 같았다.

잘 알려진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로 시작한 공연은 약 1시간 30분가량 이어졌다. 본 공연의 중심은 클래식과 남한 가요였다. ‘친근한 선율’이라는 제목이 붙은 클래식 연주에서는 ‘모짜르트 교향곡 40번’을 비롯한 클래식과 귀에 익은 세계 민요를 연주했다. ‘올드 블랙 조’ 같은 미국 민요도 있었다. 단 제목을 ‘흑인 영감 죠’라고 바꿨고, 빠르게 편곡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도 ‘가극극장의 유령’으로 표기했다. 외국곡 시리즈는 2012년부터 북한 예술단이 즐겨 연주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연주 수준은 상당했다. 수준 높은 연주자들을 선발하고,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윤범주가 지휘한 ‘노래련곡’(메들리)에서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당신은 모르실거야’ ‘다함께 차차차’ ‘홀로아리랑’ 등 10곡의 남한 노래를 연주했다. 북한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노래로 소개된 ‘사랑의 미로’도 포함됐다. 앞서 부른 ‘J에게’까지 이날 공연에서는 총 13곡의 남한 가요가 선보였다. 북한에서도 ‘한류’라는 흐름으로 남한 가요가 알려지기는 했지만, 북한 예술단에 의해 공식적인 무대에서 연주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곡들은 주로 트로트와 발라드 등 1970~80년대 가요였다. 김정일이 좋아했다거나 과거 남북문화교류가 활발할 때 남한 가수들의 평양 공연에서 불린 노래들이 많았다.

공연 구성으로 볼 때, 공연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논란을 막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했다. 논란이 예상된 ‘모란봉’은 아예 공연 레퍼토리에서 제외했다.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에서는 논란이 될 수 있는 3절의 ‘태양조선’을 빼고, ‘우리 민족’으로 가사를 바꾸어 불렀다.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경음악으로 연주하면서, 자연풍경을 무대 배경으로 구성했다. 무대 배경에는 북한 공연에서 보였던 미사일 발사 장면이나 김일성 가계 일가의 영상 등의 내용이 없었다.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는 장면을 배제한 것이다. 이번 공연을 북한 언론에서도 밀착 취재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파격이었다. ‘절박한’ 또는 ‘절실한’ 북한의 대화 의지가 느껴졌다.

북한에서 예술은 정치의 한 부분이다. 정치가 없는 예술, 정치에 복무하지 않은 예술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고 본다. 그렇기에 예술은 철저하게 당의 정책과 연동되어 움직인다. 당의 지침에 따라 창작방향이 결정되고, 검열을 거쳐, 인민들에게 보인다. 정치적인 내용을 배제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말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조선시대 문화예술에서 유교적 가치를 빼거나 종교예술에서 종교 내용을 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술에 대한 기본 인식과 가치, 존재 이유에서 우리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런 점에서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은 북한이 최대의 성의와 양보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한다.

김정은 체제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모란봉악단을 중심으로 구성하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현송월이 단장으로 오고, 부단장이자 작곡가인 안정호와 창작실장 우정희가 실무를 총괄하였지만 중심은 정통 클래식을 중심으로 하는 삼지연악단이었다. 클래식과 남한 가요를 중심에 배치하면서, 정치적 논란을 피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평창올림픽은 남북관계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남북 사이에 막혀 있던 문화 교류와 협력 창구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공연은 공연일 뿐, 예술단 공연에 취해 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게 현실이다. 평창 이후에 정치가 잘 풀려 문화의 물꼬도 터주길 기대하면서 객석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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