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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황제, 위안스카이, 시쩌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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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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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 / 논설위원

   
 

황제의 원조는 진나라 시황제(始皇帝)다. 초대황제라는 뜻에서 시(始)자를 붙였고, 이후 ‘2세, 3세, 4세…’ 등의 만세까지 이어질 것이라 장담했다. 하늘의 권능을 받은 황제이니 쉽게 얼굴을 내비치지 않고 그저 징조만 느끼게 하면 된다는 신비주의 컨셉트를 내세워 ‘짐(朕·조짐)’이라 했다. 급기야 불로장생의 미몽에 사로잡혀 술사를 시켜 불로초를 구해오도록 했다. 그러나 6국을 멸한(기원전 221년) 시황제의 진나라는 단 15년만(기원전 206년)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후 2100여년이 지난 1912년 쑨원(孫文)에 이어 중화민국 대총통에 오른 위안스카이(袁世凱·사진)도 만만치 않았다. 위안스카이는 “황제가 될 사주와 관상”이라는 술사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급기야 1916년 1월 공화정을 뒤엎고는 중화제국의 황제에 등극했다. 술사가 마지막으로 위안스카이에게만 전한 점궤는 ‘九九’였다. 그러나 위안스카이의 야망은 아침이슬 같았다. 거센 반대에 부딪쳐 만 81일의 재위로 끝났다. 술사의 점궤 구구(九九)가 바로 9×9=81일이었다는 후일담이 있다.

1949년 신중국이 출범했지만 ‘개인숭배’로 포장된 신개념의 황제가 나타난다. 마오쩌둥(毛澤東)이다. 그러나 마오가 주도한 대약진운동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1960~61년사이에만 홍수와 한발까지 겹쳐 무려 2000만명이 넘는 인민이 죽었다. 극심한 비판에 시달려 2선으로 밀려난 마오쩌둥은 1966년 홍위병을 앞세워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10년간 150만명이 박해를 받은 문화대혁명이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학생이 스승을 욕보인 인간성의 상실, 그것이 중국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됐다.

근자에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장기집권을 허용하는 개헌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중국대륙이 들끓고 있다. 급기야 중국정부는 시황제(習皇帝), 불로장생, 독재, 원세개(袁世凱), 시쩌둥(習澤東), 만세, 종신, 1984, 동물농장, 등기(登基·황제등극), 이민(移民), 3연임, 몰염치, 부동의 등 같은 금지어 목록을 계속 업데이트 하고 있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올라오는 비판 풍자어를 어떻게 다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기원전 844년 주나라 여왕은 비방하는 자를 감시하고, 그들이 입을 놀리면 죽였다. 백성들은 감히 말하지 못하고 길에서 만나면 눈짓으로 뜻을 나눴다.

여왕은 재상 소공을 불러 “내가 비방을 없애버리니 아무도 감히 말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껏 자랑했다. 그러나 소공은 ‘그게 자랑거리가 되냐’고 정색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보다 심각합니다. 물이 막혔다가 터지면 어떻습니까. 둑이 터지는 것처럼 엄청난 피해자가 나올 것입니다. 물을 다스리는 자는 수로를 열어 물이 흐르게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백성들이 말하게 해야 합니다.”

소공은 “정치를 잘하고 못함이 다 백성들의 말에 반영된다”면서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백성은 속으로 많은 생각을 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이 지금 입으로 말하는 것은 속으로 많이 생각한 연후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왕은 소공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3년 뒤인 기원전 841년 백성들이 연합해서 난을 일으켰고 여왕은 왕위를 빼앗겼다. 이후 두 재상인 소공과 주공이 14년간이나 정무를 공동으로 맡았다. 그것을 역사는 ‘공화(共和)의 시초’라 한다. 시진핑 주석의 고사성어 정치와 외교는 정평이 나 있다. 그런 시주석이 <사기> ‘주본기’에 등장하는 주여왕의 실패담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시황제(始皇帝), 위안스카이, 마오쩌둥의 사례 또한 꿰뚫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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