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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국 모함 투서로 도산은 끝내 추방당해도산 공화국(16)
장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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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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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

파차파 한인촌과 도산의 삶…
개인에 대한 투서 넘어서
대한인국민회·흥사단을
사회주의 조직으로 모함

도산 안창호는 모두 3차례 미국에서 거주했다.

첫번째는 1902년부터 1907년까지다. 즉 샌프란시스코에서 리버사이드로 이주하여 파차파 캠프 또는 도산 공화국을 만들어 독립운동을 한 시기이다.

두 번째는 1911년부터 1919년까지로,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 활동을 활발히 전개한 시기다.

마지막은 1924년부터 1926년까지로, 미국 전역을 순례하면서 동포들을 격려하고 유학생들이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 시기이다.

한편, 안창호는 미국 이민국에 의해 강제로 추방되었는데, 무슨 이유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 추방되었는지 여기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도산 안창호는 1926년에 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하와이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추방'되면서 가족과 영영 이별하게 된다. 그리고 윤봉길 폭탄 투하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1938년에 생을 마감한다.

   
   
▲ 안창호의 명함 앞뒷면.

연방 노동부 산하에 속했던 이민국 자료(1924~1926)에 의하면, 이승만 추종자로 추측되는 콩 왕(Kong Wong), 찰스 홍 이(Charles Hong Lee)라는 두 사람 이름으로 안창호를 모함하는 투서가 접수됐다.

이 투서의 요지는 "안창호가 상해를 출발하여 하와이를 거쳐 곧 미국에 도착할 예정인데 그는 볼셰비스트, 즉 사회주의자이니 그를 유심히 잘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민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특별히 조사하고 그를 중국으로 조속히 추방하길 희망한다"라고 했다.

이 투서로 미국 이민국은 도산 안창호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도산 안창호는 이민국으로부터 대질 심문을 받았다. 그는 줄곧 감시 당하다가 결국 1926년 3월 초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와이를 거쳐 추방됐다.

"볼셰비스트 안창호"

연방 노동부 산하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에 1924년 12월 15일 '콩 왕'과 '찰스 홍 이' 이름으로 서명한 투서가 전달됐다. 도산 안창호가 1924년 12월16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 투서가 접수된 것이다. 그러나 이민국 담당자에게는 미처 전달 되지 못했기 때문에 도산 안창호의 입국은 허락되었다.

이 투서는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러시의 알링턴 호텔 전용 편지지에 썼는데 총 4장의 장문이다. 영어 문법이 정확하지 않아서 뜻을 번역하기가 약간 힘들었다.

여기서 콩 왕과 찰스 홍 이 두 사람은 동일인물인지 아니면 다른 두 사람인지 확인되지 않았으며 이민국에서도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찾지 못했다고 이민국 자료는 설명하고 있다.

투서 내용은 이렇다.

"안창호가 상해를 출발하여 하와이를 거처 곧 미국에 도착할 예정인데 그는 볼셰비스트, 즉 사회주의자이니 그를 유심히 잘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호놀룰루를 경유하여 곧 미국에 도착할 것이다. 그는 미국에 여러 해 살았으며 그의 가족은 LA에 거주하고 있다.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6년간 체류하면서 볼셰비스트 정부 관계자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했는데 그가 지금 미국으로 오고 있다. 그는 볼셰비스트 정책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으며 LA에 본부를 둔 대한인국민회, 그리고 흥사단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전역과 멕시코에서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이민국에서 대한인국민회를 특별히 조사하고 그를 중국으로 조속히 추방하길 희망한다. 아마 대한인국민회는 자신들의 지도자인 안창호를 보호하려 할 것이다. 볼셰비스트 정책을 널리 전파하려고 하는 도산 안창호는 속히 중국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이민국에서 로스앤젤레스 이민국에 서신을 보내면서 "이 투서 내용의 진위를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현지에서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라면서 공식 조사를 시작했다.

투서에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이 볼셰비스트이며 그가 조직한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 역시 볼셰비스트 조직으로 사회주의를 적극 전파하여 미국에 위협이 된다는 점을 시종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투서가 단순히 안창호 개인 만을 모함한 것이 아니고 흥사단과 대한인국민회도 볼셰비스트로, 즉 과격한 사회주의 단체로 모함했다는 것이다. 투서에는 이민국 관리자에게 경고하는 내용이 쓰여 있다.

나는 콩 왕과 찰스 홍 이에 관한 자료를 수개월 동안 추적했으나 찾을 수 없었다. 가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대한인국민회와 대립 관계에 있었던 대한인동지회 관련 인물들, 즉 이승만의 대리인 또는 이승만의 추종 세력이 투서를 보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당시 미주 한인 사회는 안창호 지지 세력인 대한인국민회와 이승만 지지 세력인 대한인동지회, 박용만의 군사력 증진 세력 등으로 분열되어 반목과 충돌로 상호 불신과 대립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승만은 1921년에 동지회를 설립했는데 그 목적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상해 임시 정부를 재정적으로 돕기 위해서였다. 이승만은 추후 영구 총재로 추대되었으며 동지회 회원은 총재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서약해야 했다. 따라서 당시에 동지회와 대한인국민회는 서로 세를 확장하고 회원을 영입하기 위해 반목, 대립, 충돌이 심했던 것이다.

즉 이 투서의 의도는 안창호,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을 공산주의 단체로 모함하여 안창호의 미국 입국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대한인국민회와 흥사단을 미국 정부의 견제와 감시 대상이 되도록 하여 그 세력을 와해시키고 동지회의 세력을 확장하여 동지회를 미주 한인 사회의 대표 단체로 발전시키려는 것이다.

'도산 안창호' 영문판 저자인 김형찬은 "도산 안창호가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이민국 관계자가 '흥사단은 나쁜 일을 하는 단체'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김형찬은 또한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누가 흥사단에 대한 모함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발굴된 자료를 통해 그 이유가 분명히 밝혀진 것이다.

안창호의 추방은 콩 왕과 찰스 홍 이 이름으로 보낸 볼셰비스트 모함 투서로 시작되었으며 이로 인해 미국 이민국에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고 안창호는 1926년 3월 2일 미국에서 오스트레일리아로 추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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