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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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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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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 /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서양에서 음은 음악을 건축하는 벽돌로 발전해
윤이상은 하나의 음이 가지는 표현력을 되살려

   
 

음을 정확하고 곧게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자를 대지 않고 직선을 그리는 것처럼 어렵다. 한 번 어떤 음을 정해서 불러보시라. 음높이가 흔들리든가 강약이 일정치 않을 것이다. 목소리도 그렇고 악기도 그렇다. 악기를 연습하는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음 하나하나를 균일하게 쭉 뻗어내는 연습이다. 음악에서 쓰이는 소리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음악 문화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정확하고 곧은 음의 추구는 서양음악에서 유난했다. 다른 많은 문화권에서는 오히려 곧은 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전통에서는 음을 흔들거나 꺾거나 들어 올려 음악을 만든다.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자, 하나의 경전과 교리, 하나의 예전과 음악으로 모든 지역의 교회들을 통일시킬 필요가 생겼다. 로마는 판도가 워낙 넓어서 다양한 음악전통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많은 전통을 수렴하고 초월하여 공통으로 적용할 음악을 만들어 내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흔히 서양음악사의 기원으로 여기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9세기경에 확립되기까지는 수백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 기간에 각 지역의 고유한 전통은 점차 탈색되었다. 소리를 흔들거나 꺽는 표현은 배제되고 비개성적이고 무표정한 소리의 음악이 되었다. 음 하나하나가 가지는 표현력은 죽어버렸다. 대신 중요한 것을 얻었다. 그 위에 다른 음을 쌓아 올릴 수 있는 구축적 가능성이다. 음을 떨거나 흔들면 그 위에 다른 음을 얹어 쌓기 어렵다. 그러나 비개성적이고 판판하게 다듬어진 소리 위에 다른 소리를 얹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시도를 유발하기조차 한다. 수석(壽石)은 멋지지만 높은 건축물을 쌓아 올릴 수 없고, 벽돌은 밋밋하지만 그것을 쌓아 다양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것과 같다.

단성부로만 부르던 성가는 9세기 이후 다른 음이 얹혀져 2성부로 불리기 시작했다. 다성부 음악의 시작이다. 이 방식은 곧 3성부 4성부로 확대되었고 몇 세기가 지나 대위법의 음악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다시 몇 세기 후에 화성음악을 낳았다. 이렇게 음의 벽돌로 음악의 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은 20세기까지도 계속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자 현대 작곡가들은 선율, 화성, 리듬, 강약을 주요한 요소로 하던 음악의 세계에 답답함을 느끼고 새로운 소리의 세계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시도된 것이 선율과 리듬 대신 음색과 음향이 지배하는 음악이었다. 윤이상이 유럽에 등장한 것이 이때였다. 한국의 전통음악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서양음악에서 오랫동안 벽돌처럼 취급되던 음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음을 떨고 꺾고 뻗어 그 하나하나가 다시 의미를 가지도록 한 것이다. 또 미세한 음정의 변화와 자디잔 음들로 이루어진 풍부한 장식음들의 음악을 보여주었다. 태평소의 자유자재로 흔들리는 가락이나 수제천의 유장한 합주를 이루는 잔가락들의 올을 알고 있는 그였으므로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추상화된 부호의 세계에 나타난 붓글씨처럼 그의 음악은 독특하고도 획기적인 것이었다.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음악의 뿌리를 동양의 사상, 한국의 미적 원형질에서 찾기도 하였다. 하기는 동양의 사상과 한국 문화의 원형질은 붓으로 한 획을 그을 때에도, 젓대로 한 음을 뽑을 때에도 깃들어 있으니 그러한 이해가 그다지 과장된 것도 아니다.

그런 그가 고향을 그리워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동백림사건으로 인해 2년여 복역하던 중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1969년 한국을 떠난 이래 여러 번 귀향을 시도하였지만 1995년 타계할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정치적인 이유였다. 그의 마음에는 분단이 없었던 듯 행보가 자유로웠으나 현실정치에서는 번번이 가로막혔다.

지난 2월 25일 사후 23년 만에 그의 유해가 고향 통영에 도착하였다. 3월 30일 열리는 통영국제음악제는 그의 안장식으로 음악제를 시작한다고 한다. 몸과 음악이 뿌리를 둔 고향에서 그가 평안히 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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