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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없는 ‘북한 책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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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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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 방송대 교수 문화교양학부]

   
 

어느 야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30년 동안 북한에 많이 속았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유는 2000년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후에도 북한이 핵전쟁을 준비하고 핵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북한이 여섯 차례나 핵실험을 하고 미 대륙까지 도달한다는 화성 15호를 개발했으니, 거짓말로 시간을 벌면서 핵전쟁을 준비했다는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북한이 수십년간 앞으로는 거짓 협상하면서 뒤로는 핵전쟁을 준비했는지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무기의 필요성을 절감한 시점은 한국전쟁 때였다. 미국이 핵공격을 하면 살아날 방법이 없다는 절박감에서였다. 이런 이유에서 정전협정 후 북한은 소련의 연구용 원자로를 설치했고, 1980년대에는 소형 흑연감속로를 건설하여 가동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플루토늄이 상당량 포함된 사용후핵연료가 만들어지고, 북한이 후속 흑연감속로 건설에 들어가자 미국이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국제원자력기구에서는 사찰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갈등이 깊어지자 북한은 1993년에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자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봉쇄하기 위해 북한 핵시설 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했고,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 전쟁위험이 고조되자 1994년 미국과 북한은 협상을 시작하여 10월에 제네바 합의에 도달했다. 제네바 합의는 제대로 이행만 되었다면 한반도에 평화가 올 수 있는 획기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합의의 핵심 내용은 북한이 흑연감속로와 관련 시설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은 2003년까지 2개의 대형 경수로를 건설해준다, 미국은 경수로가 완공될 때까지 북한의 흑연감속로 포기로 인한 에너지 손실분을 보충하기 위해 매년 50만t의 중유를 지원한다, 미국과 북한은 대사급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을 포함하는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향해 나아간다 등이었다.

그러나 제네바 합의는 미국의 중유 공급 중단 발표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으로 2003년에 파기되었다. 야당 대표는 이 합의는 파기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유는 북한이 처음부터 속임수를 썼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다. 북한이 합의 파기 후 3년이 지난 2006년에 첫 번째 핵실험을 했으니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파기의 책임이 북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도 처음부터 합의 이행에 미온적이었고, 합의문에 없는 내용을 가지고 계속 트집을 잡았기 때문이다. 합의 파기 후에는 미국 관리들 입에서 북한이 10년 안에 붕괴할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거짓으로 합의를 해주었다는 증언도 나왔고, 미국 측 협상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는 합의문에 없는 대포동 미사일 같은 것을 트집거리로 삼은 탓에 합의가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으로서는 무엇보다 2003년까지 완공 예정이던 경수로가 2002년에야 겨우 기초공사에 들어갔으니 미국을 신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이 시간을 벌려는 책략일 수 있다, 거짓말에 속지 말라고 충고하는 야당 대표에게 그러면 대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야당 대표는 그걸 왜 자기에게 묻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대안에 대해 아마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를 위해 정상회담 같은 최고 수준의 협상 말고 무슨 대안이 있는지 모르겠다. 북한에 시간을 벌어주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북한의 핵시설들을 공격해야 한다. 그렇다면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 야당 대표가 정말 전쟁을 원하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그가 대통령을 영국의 체임벌린과 비교하던데, 비교대상을 잘못 잡았다. 1930년대의 영국과 독일은 지금 남과 북의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비교대상을 찾는다면 1970~1980년대의 서독과 동독이 될 것이다. 두 나라는 교류협상과 정상회담을 거쳐 통일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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