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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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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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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사랑하는 가족이나 가깝게 지냈던 친지와 영원히 이별하는 장례식은 한 번 열리는 것이 정상인데 상황에 따라서는 안장처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한다. 주로 타지에서 숨을 거둔 망자의 유해를 수습해 고향으로 이장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 2월23일에 베를린 가토 묘지에서 윤이상 선생의 이장식이 있었다. 날씨는 추웠지만 때마침 따뜻하게 비낀 햇살은 고인의 고향 길을 평안하게 인도하는 것 같았다. 고인의 유지에 따라 가족과 친지 20여명 정도가 모여 간소한 불교의식으로 거행된 23년 전 장례식 때는 날씨가 꽤나 쌀쌀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평화와 평정을 찾은 현자(賢者)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선생의 플루트 독주곡 ‘살로모’가 조용히 흐르는 가운데 우리는 윤 선생과 이별했다.

작곡가로서 그리고 세계인이자 동시에 애국자였던 고인을 생각할 때면 나는 또 다른 음악가 쇼팽을 떠올린다. 물론 두 사람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음악세계는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예술적 영감은 모두 조국의 역사와 전통에서 비롯했다. 윤 선생에게는 우리의 전통적인 창의 시김새나 가야금의 농현(弄絃)이었다면 ‘피아노의 시인’ 쇼팽에게는 ‘폴로네즈’나 ‘마주르카’가 바로 그러한 뿌리였다. 두 사람 모두 이국 땅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고난과 압제에 신음했던 조국의 운명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친지들이 한 줌의 조국 흙을 담아 선사한 은잔을 지닌 채 20세에 바르샤바를 떠나 39세에 파리에서 병사한 쇼팽은 러시아의 압제에 저항했던 폴란드 인민에게 바친 유명한 에튀드(연습)곡 ‘혁명’을 남겼다. 음악으로 표현된 민족적 기념비라고 할 수 있는 이 짧은 곡은 비통 속에서도 해방을 향한 그의 불타는 열정을 섬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타민족이 아니라 바로 동족에 의해서 자행된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으로부터 받았던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딛고 고인이 작곡했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들을 때마다 나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투쟁하는 한국 민중의 뜨거운 힘을 느낀다.

선생의 묘비에 새겨진 ‘處染常淨(처염상정)’은 혼탁한 곳에 있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연꽃을 그리고 있다. 비록 절망스럽고 피하고 싶은 현실이지만 그 속에서도 아름다운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부단의 노력을 기울였던 고인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쇼팽은 자기의 심장을 조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큰누이가 그의 심장을 몰래 코냑 병에 보관해서 고향으로 가져와 동생이 바르샤바를 떠나기 직전까지 살던 집 근처에 있는 ‘성십자가 성당’의 돌벽 안에 안치했다. 그리고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는 마태복음의 6장 21절을 그 밑에 새겼다. 유한한 지상세계에 쌓아놓은 재물이 아니라 성령의 구원만이 영원한 보배라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대하여 윤 선생은 더러움이 있으면 당연히 깨끗함도 있게 마련이라는, 즉 이것이 있으면 저것도 있다는 연기(緣起)의 세계를 믿었다. 전자는 성(聖)과 속(俗)의 단절을 통해서, 후자는 오히려 이의 연속에서 진리의 존재양식을 발견했다.

어떤 음과 그 다음에 오는 음 사이에 항상 단절이 있는 피아노에 의거해서 쇼팽은 많은 아름다운 곡들을 남겼다. 첼로주자였던 윤 선생은 음의 흐름과 연결을 보다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현악기나 관악기를 선호했다. 또 서양의 음세계가 마치 잣대를 사용해서 그린 직선의 세계라면 동양의 그것은 붓글씨처럼 명암, 강약과 장단을 늘 지닌 세계라고 음악미학에 있어서 서양과 동양의 차이도 강조했다. 언젠가 고인은 나에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에 비교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보였던 구름이 어느 새 사라지고 사라졌던 것처럼 보였던 구름이 이내 다시 나타나지만 결코 같은 모양을 반복하지 않는 것처럼, 우주 속에 여러 모습을 띠며 끝없이 흐르는 음을 자신은 다만 악보에 옮겨 놓았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깊이 흐르는 선생의 음악세계를 생각하면 나는 먼저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이 곡에 등장하는 시를 선택하는 고인의 작업을 도우며 작품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우리 민족의 기나긴 역사에서 느꼈던 절망과 한을 뒤로하고 평화와 통일이 오는 감격스러운 그날의 환희를 느낀다. 러시아의 핍박에 시달렸던 조국의 푸른 호수와 울창한 숲, 그 땅에서 평화스럽게 살고자 했던 핀란드인의 꿈을 표현했던 시벨리우스의 교향시곡 ‘핀란디아’가 있다. 핀란드의 제2의 국가로서 사랑을 받고 있는 이 곡처럼 선생의 교성곡도 우리 땅에서 더 자주 울려 퍼져 더 많이 기억되기를 나는 항상 바란다. 프라하의 지하철역에는 전차의 도착과 출발을 알리는 짧은 신호음악이 울린다. 스메타나의 교향시곡 ‘나의 조국’ 속에 나오는 ‘몰다우강’의 첫 소절이다. 고인의 곡도 짧은 소절이라도 평양과 서울의 지하철역에서도 들을 수 있는 그날을 가끔 상상해 본다.

이제 선생의 유해는 잔잔한 파도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는 양지바른 고향 땅에 영원한 안식처를 갖게 되었다. 고인의 뜻대로 자주와 평화가 뿌리내린 조국이 아니라, 여전히 주위 강대국의 헤게모니 쟁탈전 속에서 남북과 남남 갈등으로 뒤틀린 현실은 이별을 고하는 내 마음도 무겁게 만든다. 그러나 흙탕물 속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향기를 발하는 연꽃처럼 윤 선생의 맑은 영혼과 아름다운 선율은 우리 민족의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지며 보다 더 인간적이고 평화스러운 세상을 향한 우리의 노력을 계속 독려하리라고 믿는다.

동백꽃이 활짝 필 통영묘소를 그리며 나는 이장식에 앞서 묘역의 주위를 혼자 돌아보면서 고인과 함께 보냈던 지난 날들을 회상했다. 지난여름에 가득했던 해당화와 산딸기는 이제 앙상한 가지만 남겼다. “우리의 운명은 종종 겨울의 과실나무처럼 보인다. 바싹 마른 큰 가지며 뾰쭉한 작은 가지를 보는 슬픔 속에서 이들이 오는 봄에 다시 푸르러지며 꽃을 피우고 그래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누가 감히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또 이를 알고 있다”는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방랑시대>의 한 구절을 떠올리며 앞으로도 계속 흐를 공간 속에서 베를린과 통영은 반드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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