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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기차는 떠난다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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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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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회 / 논설위원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정세는 대결과 화해 둘 중의 하나였다. 그 사이의 중간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를 흘린 전쟁 이후 대결이 계속된 것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크게 보면 한반도는, 몸은 대결에 머물러도 발은 화해로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대결의 절정기인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도 화해를 시도했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화해를 향해 일정 정도 몸을 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다만 이후 9년은 화해도 아니고 대결도 아닌, 그저 관성에 몸을 맡긴 시대였다.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1년 소련 해체로 냉전은 끝났지만 적어도 한반도에서 미국은 냉전을 끝내지 않았다. 북한의 핵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현실적 과제가 등장한 뒤에야 비로소 대결과 화해 사이에서 효용성을 저울질했다. 빌 클린턴·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야 뒤늦게 화해로 방향을 잡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8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한국의 9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냉전 못지않게 중국에 맞선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에 목을 매다 일본군 성노예에 대한 한국민의 역사 인식까지 비난하며 인권 외교라는 자신들의 가치도 훼손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벌어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현실화를 둘러싼 대결 국면은 지난 8~9년 허송세월의 누적치였다. 어찌 보면 냉전 시기보다 더한 위기 국면이었다.

반전은 드라마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시작된다. 한반도의 반전은 전쟁설이 절정으로 치닫던 순간 시작됐다. 2월 9일 평창올림픽 개막과 북한 특사단 방남, 3월 5일 남한 특사단 방북, 4월 남북 정상회담 합의, 5월 북미 정상회담 합의. 단 2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현기증 나는 속도 못지않게 그 전개 양상도 놀랍다. 한반도 반전의 파천황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두 장면을 꼽고 싶다. 하나는 한국 특사가 김정은의 메시지를 받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전달한 것. 또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대화 요청을 그 자리에서 수락하면서 이를 메신저인 한국 특사가 백악관 앞뜰에서 발표하도록 부탁한 것이다. 우호적인 국가 사이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이 정도면 발이 몸을 끌고 나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기차에 몸을 싣고 달리기 시작한 것 아닐까. 한반도 기차는 기적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당사국과 주변국에는 여전히 관성이 남아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외교능력을 의심하는 도박론이 나온다. 전 정부의 관료들은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등의 부정적 반응을 내놓는다. 중국에서는 지금까지 중재국으로 들고 있던 지렛대를 놓칠까 걱정하고 일본은 아예 동북아에서 발판이 사라질까 노심초심한다.

한번 떠난 기차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기차를 놓칠 수 없는 이들은 서둘러 기차에 몸을 실어야 한다. 이 기차가 어떤 속도로 어디까지 갈지 확신할 수 없지만 한반도를 넘어 세계의 지평 속으로 달려갈지도 모른다.

벌써 미국에서는 북한 비핵화는 중국에 악몽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국익연구소(CFTNI)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국장은 북핵 문제에서 벗어나면 미국은 전 세계에서 중국을 억제할 능력을 갖춘다며 지정학적 지도의 재편까지 내다봤다.

역사도 그렇다. 미국은 2차대전 전범국가인 독일·일본과 우방이 됐다.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10년간 싸운 베트남과는 일찍이 수교했고 지난 5일엔 항공모함 칼 빈슨호가 다낭 항에 입항했다. 중국 견제라는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냉전 시기에도 한 나라에 묶이지 않고 중국과 소련을 오갔다. 중국과 관계는 현재 최악이다. 베트남이 그랬듯 미국과 어디까지 관계를 설정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관성은 계속 걱정을 하겠지만 기차는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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