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걸 / 논설위원

시가총액 28조원. 임직원 1만6500명. 한국기업 최초로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워렌 버핏이 투자가치를 인정한 기업. 포항시민 60%에 영향을 끼치는 회사. 군인 박태준씨가 탄생시켜 오는 4월 창립 50주년을 맞는 포스코의 실적이다.

지금은 화려하지만 1968년 모래벌판 위의 창업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돈이 없었다. 미국 등 5개국 8개사가 도와주겠다고 했다가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이 “경제성 없다”는 보고서를 내자 모른 체했다. 대일청구권 자금 중 쓰고 남은 돈을 전용했다. 기술도 일본에서 끌어왔다. 5전6기였다. ‘제철보국’이라는 야무진 꿈을 품었다. 언덕 위에 함석을 둘러 건설본부를 차려놓고 ‘롬멜 하우스’라고 불렀다. 제2차 대전 때 아프리카에서 독일군 전차사단을 이끌고 연전연승했던 에르빈 롬멜 장군의 야전사령부가 황량한 사막에 있었던 것에 빗댄 말이다. “실패하면 우향우하자”고 선언했다. 오른쪽은 영일만 앞바다였다. 여당의 정치자금 요구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격인 ‘마패’를 받아냈다. 공사 리베이트로 받은 거금을 상납했더니 대통령이 “임자가 알아서 하라”며 되돌려보냈다. 그 돈에다 사비를 보태 지은 게 포항공대(포스텍)다.

포스텍은 지난해 더타임스 선정 소규모 대학 평가 세계 3위에 올랐다. 1위인 캘리포니아공대에 바짝 다가섰다. 학교에 연간 운영비만 500억원이 소요되는 방사광가속기를 건설했다. 2년 전 준공된 4세대 가속기를 보유한 나라는 3개국뿐이다. 창업자의 귀가 열려있었기에 가능했다. 실험장비를 이용하려고 전 세계에서 박사급 연구원들이 모여들고 있다. 모기가 피를 빨아먹을 때 뇌를 통해서 피가 전해지는 동영상이 이 실험장치로 촬영됐다. 단백질 내부를 관찰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설비다. 제약 분야에서 도약할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이 대학의 성영철 교수가 1999년 창업한 자궁경부암치료제 제조회사는 시가총액 2조원짜리가 됐다. 김도연 총장은 “이런 기업 10개면 포스코에 버금갈 수 있다”고 했다. 1200조원 규모인 세계 제약시장(IMS헬스 2015년)에 도전하는 것이다. 철강왕 후예들의 꿈이 어떻게, 어디까지 이뤄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