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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범죄 냄새 파친코와 재일동포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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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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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작가 이민진 소설 ‘파친코’
재일동포 삼대의 가족 대하 드라마
민족 모순에 미시 개인사 버무려

   
 

'파친코'는 재미동포 작가 이민진(50)이 재일동포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첫 장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8)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재미동포 사회를 다뤄 호평을 받았던 이민진은 일본계 미국인 남편이 도쿄에서 근무하게 되자 4년 동안 일본에서 생활하며 이 소설을 구상하고 취재했다.

'파친코'는 시간적으로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부터 1980년대 말까지 반세기 남짓을 배경 삼으며, 공간적으로는 부산 영도에서 출발해 일본 오사카의 재일동포 밀집 지구 이카이노를 거쳐 도쿄와 요코하마까지에 이른다. 여주인공 순자가 중심 인물이지만, 그의 자식과 손자 세대가 차례로 서사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가족 대하소설이라는 점에서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닮았다.

열예닐곱살 어린 순자가 제 엄마 또래인 재일동포 유부남 한수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 소설의 출발이다. 결핵으로 죽을 위기를 순자 모녀 덕에 넘긴 젊은 목사 이삭이 순자를 일본으로 데려가 결혼하기로 한다. 서로를 향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부부는 한수의 피를 받은 첫째 노아에 이어 이삭의 아이인 둘째 모자수까지 두 아들을 얻어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이룬다. 먼저 오사카에 가 있던 이삭 형 요셉과 경희 부부가 이들을 챙기고 보살핀다.

“고개 숙이고 일만 해. 독립운동이니 사회주의니 하는 짓거리에 휩쓸리거나 휘둘리지 말라는 얘기야.”

오사카 이카이노의 집에서 이삭 부부를 맞이한 요셉이 동생 이삭에게 하는 충고다. 견실한 생활인인 요셉은 민족이나 이념 같은 커다란 가치보다는 제 한 몸과 가족의 안위와 행복을 중시하는 인물. 이상주의자요 이타주의자인 이삭 역시 가족을 챙기고 신앙에 충실하고자 하지만, 궁지에 몰린 일제 통치기구는 그런 이삭조차 내버려두지 않는다. 반역 혐의로 당국에 붙들려가 심한 고문과 오랜 옥고를 치른 그는 출옥 얼마 뒤 숨을 거두고, 역사 및 사회와 무관하게 살고자 했던 요셉 역시 원자폭탄 투하 때 심한 부상을 입으면서 가족의 삶은 크게 흔들린다.

이 무렵, 야쿠자 두목이 된 한수가 순자 앞에 다시 나타나 도움을 베풀고, 그 덕에 가족은 생계 문제를 해결하고 노아는 와세다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우연히 한수가 제 친아버지임을 알게 된 노아는 학교를 그만두고 잠적하며, 공부에 소질이 없던 둘째아들 모자수는 일찌감치 파친코 회사에 취직해 승진을 거듭하며 사장 자리에까지 오른다. 잠적한 노아 역시 아무 연고도 없는 지방 도시에서 파친코를 운영하게 되면서 형제 모두 파친코와 운명적으로 맺어진다. 게다가 일찍부터 미국계 학교를 다니고 컬럼비아대에 유학까지 다녀온 모자수 아들 솔로몬까지 금융계에서 떨려난 뒤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이어받기로 한다. “가난과 범죄의 냄새를 강하게 풍겼다”고 소설에서 서술되는 파친코가 재일 조선인을 옥죄는 운명의 굴레를 상징함과 동시에 이 소설의 제목이 된 까닭이다.

“야쿠자는 일본에서 가장 더러운 인간이에요. (…) 어리석은 엄마에 범죄자 아버지라니, 난 저주받았어요”라는 막말을 제 어미에게 퍼붓던 노아가 결국 자살로 저주의 사슬을 끊는 결말은 이 소설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다. 가족과 인연을 끊고 일본인 행세를 하던 노아의 뜻밖의 행적은 소설 말미에서 놀라운 반전을 선사한다. 회복불능의 부상을 당한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경희를 상대로 안타까운 연정을 품다가 결국 휴전선 이북 ‘조국’으로 건너간 창호의 가슴 아픈 순정은 이 소설에 또 다른 결을 부과한다.

“왜 일본은 아직도 조선인 거주자들의 국적을 구분하려고 드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말이야. (…) 일본 정부는 아직도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솔로몬의 연인인 재미동포 피비의 이런 항변은 재일동포의 삶을 한결 고단하게 만드는 일본 정부의 부당한 처우를 부각시키지만, '파친코'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재일 조선인과 일본 당국의 갈등만은 아니다. 인간사의 거대한 흐름과 미시적이며 섬세한 세부가 어우러지면서 소설은 한층 복합적인 울림과 설득력을 지닌다. 종종 매끄럽지 않은 번역과 적잖은 오자가 독서의 흐름을 끊는 것은 아쉽다.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문학사상·각 권 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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