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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유관순 부음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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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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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 / 논설위원

   
 

1995년 5월13일 영국인 앨리슨 하그리브스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무산소 등반에 성공한 최초의 여성이자, 남녀를 통틀어 이미 설치된 고정로프에 의존하지 않고 정상에 오른 두번째 등반가였다. 정상에서 두 자녀에게 보낸 “얘들아. 엄마가 올라왔어. 사랑해”라는 라디오 메시지는 영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3개월 후 하그리브스는 K2 등반 중 돌풍에 휘말려 숨졌다. 향년 33살. 두 자녀의 엄마로서 너무 무책임한 등반이었다는 ‘사후 악플’이 쏟아졌다. 영국의 소설가 샬럿 브론테(1816~1855)는 계관시인 로버트 사우디(1774~1843)에게 자신의 소설 한 편을 보낸다. 하지만 “문학은 여자의 일이 아니며, 여자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지독한 남녀 차별적인 답장을 받는다. 그럼에도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끝까지 믿은 브론테는 19세기 영국을 뒤흔든 문제작 <제인 에어>를 썼다. 브론테는 39살 임신 중에 숨졌다.

둘은 뉴욕타임스가 제110회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한 지난 8일부터 다루고 있는 ‘주목받지 못한 여성들’의 부음 기사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쿠바 남성의 비밀결사를 꼬집은 판화가 벨키스 에이온(1967~1999)과 중국 여성혁명가 추근(秋瑾·1875~1907), 인도 여배우 마두발라(1933~1969)의 삶도 재조명했다. ‘1851년 창간 이후의 뉴욕타임스 부고 기사가 백인 남성 위주였다’는 자성에서 비롯된 부음 기사라는 설명이 달렸다.

3월28일자 인터넷판엔 제목 그대로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인물의 부음 기사가 실렸다. ‘일제에 저항한 한국의 독립운동가, 유관순’이었다. 일제에 의해 작성된 유관순 열사(1902~1920년)의 수형카드를 싣고, ‘16살 소녀가 평화로운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자유를 향한 민족 열망의 얼굴이 되었다’는 부제를 달았다. 열사가 모진 고문 끝에 순국 직전인 1920년 9월28일 썼던 짧은 글 한 편을 소개했다. ‘일본은 곧 패망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98년 만의 부음 기사’를 보며 새삼 반성하게 된다. 유관순 열사의 순국 100년이 다가오는데, 우리는 지금 열사의 염원을 받들고 있는가. ‘간과해서는 안될 부음 기사’를 제대로 써야 할 자들이 바로 우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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