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8.5.25 금 17:37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기고
남북화해 다행이지만 들뜨지는 말아야
김삼오  |  oktime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5.16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김삼오/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전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서울특파원]

   
 

누군가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희망이 없다고 갈파했던가. 맞는 말이다.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알 수 없고 현재를 모르고 미래를 점 칠 수 없다. 그 면에서 나는 한반도 문제 이해에 조금은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갑자기 국내외에서 들뜬 화해 무드를 지켜보면서 말이다. 역사를 조금 읽어서만이 아니라 몸소 보고 경험한 몇 가지 기억 때문이다.

알다시피 일본이 미국 주축의 연합군에 항복을 한 날은 1945년 8월 15일이었다. 그 때 나는 우리 나이로 11세, 일본의 최대 해군 기지인 요꼬스카에서 살았다. 전쟁 중 해군을 매일 같이 봤다. 종전이 가까워지면서 거의 모든 전함을 잃어버린 일본 해군에는 전투 한번 못하고 대기 중이던 인원이 많았다.

피골이 상접한 채 기진맥진하여 남양에서 돌아오는 육군과는 달리 이들은 팔팔했다. 천황의 항복 라디오 방송을 듣고도 일전을 벌이겠다며 난리를 부린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9월에 미군이 상륙하면서 일본은 맥아더 사령부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는데 반미 소요 같은 게 없었고 조용했다. 그 후에도 미군기지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로 간간히 항의 데모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미군정에 적극 협조했다는 게 내 기억이다.

같은 군정 하에 놓인 한국은 어땠는가? 나는 부모님을 따라 그 다음해 연락선을 타고 부산항에 내렸고 고국에 돌아온 것이다. 부산항과 여러 곳에서 일본에서 ’기브미 초코렛’ 하고 쫓아 다녔던’ 바로 코쟁이 미군들과 군 지프차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과 달랐던 한가지 세태는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반미와 어수선한 좌우 대결이다.

한반도 불행의 씨앗

한 동안 시골에서 지내면서 보고 들은 게 많다. 장래 대통령이 될 이승만 씨는 전국 유세를 다녔는데 그가 탄 자동차를 향하여 총을 쏘는 사건, 서울에서는 여러 학교 스트라이크가 잦았는데 학생 지도자가 무기를 든 미군에게 대든 무용담, 외삼촌을 따라 사랑방에 가서 때묻은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은 농촌 청년들이 밤중 내 이승만 또는 김일성 지지 또는 반대 입씨름을 하던 장면이다.

한반도 불행의 씨앗은 그 때부터 뿌려진 것이다. 내 짧은 지식과 판단으로는,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도 일본처럼 조용히 기다렸으면 4.3사태, 여순 사건, 6.25동란과 같은 참혹한 민족상잔과 그간 이어져온 첨예한 남북대결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북은 남로당과 동조자들의 봉기로 쉽게 평정이 된다고 믿어 남침을 감행했다는 것 아닌가.

우리대로의 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이 있었지만, 해방은 막대한 전비와 인명 희생으로 태평양전쟁을 치른 미국의 덕이었다. 그런 나라가 한반도에 친미 정권을 세우고 자국의 세력권(Sphere of interest)에 두려고 한 것은 국제정치의 전형이었다. 손 안 대고 코 풀듯 북에 진주해 공산화를 꾀한 구 소련에게 한반도를 넘겨주려고 하겠는가. 미국은 남한에 국방경비대를 창설하게 하고 반대 세력을 토벌하기 시작한 것 아닌가.

이야기가 길어졌다. 최근 돌연히 찾아온 남북화해는 말 그대로 기적이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북한의 핵포기선언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 기적이나 낙관할 일은 아니다. 곧 있을 북미정상회담이 남북 또는 당사국 간 종전협정, 평화조약, 마샬 플랜에 비유되는 경제 원조로 이어지질 지 모르겠다. 그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아랍의 봄’?

그게 잘 된다 해도 걱정은 그대로다. 해방 후 기쁨과 환호가 잠깐이었던 것처럼 길게 봐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 남한이나 북한 모두 ‘우리는 하나’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문제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정치 체제가 똑같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유사해야 한다. 프랑스와 독일은 오랜 동안 철천지원수였다. 지금 양국은 물론, 중부 유럽에서 전쟁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은 무엇보다도 비슷한 정치체제와 사회시스템 때문이다.

남북은 전혀 반대다. 며칠 전 파주에서 북을 향하여 ‘삐라’를 날려보내려다가 제지를 당한 탈북자들이 주장한 북한인들의 ‘알 권리’는 시사하는 바 크다.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존재이유다. 화해를 위하여 국시라고 해야 할 이념을 버려도 될까.

일생이 망가진 국군 포로와 피납자, 이산가족과 남북 간 대결의 와중에서 생명을 잃은 유가족의 원한은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남한 뿐만 아니라 남북간 빈부격차도 불안 요소다. 남북교류가 넓어지면 김정은 정권은 위태로워 질 수도 있다.. 그는 그걸 좌시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이래저래 어떤 형태의 교류, 심지어 통일이 되든 양쪽을 아우르는 국민적 합의와 화해가 없이는 해방 공간에서와 같은 집단 간의 대결과 갈등은 불 보듯하다. 그리고 만약 미군이 철수했을 때 꿈직한 시리아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텔레비전 시사 프로에 나오는 통일 전문가들 가운데 이런 경고를 하는 사람을 못 봤다. 시베리아 철도 건설 같은 맘모스 경협와 투자로 돈 벌 기회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더 많다.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들뜨지 말자는 것이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