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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기 특조위원장 장완익
주간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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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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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복 / 주간경향 선임기자

ㆍ“최종 보고서에 안전사회 대안 많이 담겠다”

1871년 10월 8일 300명이 숨지고 1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한 시카코 대화재는 세계 4대 재난 중 하나다. 소방당국은 불이 캐서린 올리어리의 소 우리에서 발화됐다고 발표했다. 당시 도시 보도블록을 나무로 만들었는데 불은 이 보도블록을 타고 빠르게 전 도시로 번졌다. 그런데 2012년 시카코 시의회는 사고 원인을 재조사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재조사 결과 아일랜드인 캐서린 올리어리는 당시 시카코 ‘기레기’ 사이에 만연했던 반(反)아일랜드 정서로 범죄혐의를 뒤집어 쓴 것으로 드러났다. 시카코는 140년 만에 이 화재 원인을 정정했다.

   
 

사회적 참사 특별법으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두 사건에서 관심은 단연 세월호로 보통 ‘세월호 2기 특조위’라 부른다. 2기 세월호 특조위가 가동된 것은 검찰 수사, 국정조사, 특별조사위(1기), 국민조사위, 선체조사위(현재 가동) 활동에도 불구하고 미흡했기 때문이다.

앞서 시카코 대화재를 예로 든 것은 ‘또 세월호 타령이냐’는 일부 인식 때문이다. 140년 전 사고도 재조사하는 마당에 세월호는 이제 2년밖에 안된 사고다. 게다가 음모론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2기 특조위는 이를 말끔히 규명하고, 본질적인 재발방지 보완책까지 건의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막중한 책무를 진 인물이 장완익 세월호 2기 특조위 위원장이다. 그는 1기 특조위 비상임위원으로, 선체조사위에서도 활동해 업무의 연속성 측면에서 ‘적임’이다. 마침 5월 10일 세월호가 바로 세워졌다.

1기 특조위 비상임위원 지내

“선체조사위가 8월 6일까지 조사를 마치면 이후 우리가 맡아서 할 것이다. 선체조사위가 침몰 원인 등에 대해 확실히 조사하면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별도로 할 일은 없다. 아직 특조위가 본격 출범하지 않았다. 5월 말 시행령과 직제가 완비되면 파견공무원 받고, 직원 채용 등을 8월 초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현행법에는 선체조사위와 2기 특조위의 업무 구분이 명확지 않다. 장 위원장은 “우리는 침몰 원인도 보고 또 왜 구조를 못했는지, 정부 대응의 문제점은 뭔지, 미흡하다면 선체 조사도 한다”고 말했다. 2기 특조위는 조사 결정을 내리고 1년간 활동해 미흡하면 1년을 연장하고, 보고서 작성기간 3개월을 합해 모두 2년 3개월간 활동할 수 있다.

   
▲ 장완익 위원장이 서울 명동 특조위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1기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의 방해 때문에 일을 못했다. 1기 특조위에서 미진했던 것이나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1년 6개월 조사, 보고서 작성 3개월인데 실제 조사를 11개월밖에 못했다. 인력도 법에는 120명으로 돼 있지만 시행령에는 85명으로 6개월 뒤에 30명 더 뽑을 수 있게 했다. 아예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

-1기 특조위 활동을 보니 장시간 인천항 CCTV를 분석해 세월호 화물을 검증하더라. 그래서 내린 결론이 세월호에 철제 빔 몇 개 더 실었다는 것이다. 그것에 시간을 쏟는 것이 침몰 원인을 밝히는 데 그렇게 중요했나.

“일단은 200개가 넘게 조사신청이 들어왔다. 들어온 신청을 검토하고, 통보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다. 원래 세월호 특조위는 직권조사 위주로 하기로 돼 있는데 신청 위주로 처리했다. 먼저 큰 계획을 짜놓고 직권조사를 하다보면 신청이 들어온 소소한 문제도 다 처리할 수 있었는데, 신청한 것을 처리하다 보니 행정역량이 그쪽으로 다 갔다. 조사의 큰 계획을 짜고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

1기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지켜보면서 답답했던 점이 이것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특조위 활동에 비협조, 아니 방해할 것이 뻔했다. 될 수 있으면 활동기간을 줄이려는 정부에 기간 연장을 요청한 것도 ‘순진’했다. 당연히 핵심 위주로 신속한 조사를 하고, 정부 조사 방해행위에 즉각 항의하거나 구체적 증거를 남겨야 했다. 기자는 1기 이석태 위원장에게 ‘정부의 방해행위를 위원회 공식기록으로 남기라’고 조언까지 했다. 그러나 1기 특조위는 변변한 공식 보고서조차 남기지 못했다.

직원 교육 통해 조사의 큰 틀 공유

정 위원장은 “1기 세월호 특조위는 조사관들이 모두 각자 생각하는 부분, 자기가 의심스런 부분을 조사했다”면서 “이번에는 전체 직원이 충원되면 교육을 통해 조사의 큰 틀을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옳다. 2기 특조위는 1기 특조위의 난맥과 순진함을 반복해선 안된다. 그때처럼 정부의 방해는 없겠지만 2기 특조위는 가습기살균제까지 다뤄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빠듯할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관저에 있더라도 청와대 컨트롤타워는 돌아갔어야 했다”면서 “이 문제가 구조 실패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거의 끝났다.

“세월호가 인양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진실을 가리는 것이 무의미했다. 광주고법에서 조타 실수는 인정되지 않았다.”

-꼭 세월호를 인양해야 침몰 원인을 알 수 있다는 얘기인가.

“직접 보지 않고는 여러 가지로… 명백하지 않다. 1기 특조위가 하지 못한 것이 있다. AIS(선박자동식별장치) 항적이나, VTS(해양교통관제장치)라든가, 화물이 어느 위치에 실렸는지, 검찰에서 봤겠지만 시간에 쫓겨 봤기 때문에….”

-검찰에서 관련자를 사법처리하는데 대충 봤을까.

“검찰은 구속기간이라는 것이 있어 확실한 결론이 아니라도 결론을 내렸어야 했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합리적으로 판단했겠지만 대법원에서 뒤집어진 것도 있다.”

-세월호는 국내 보험사에 보험을, 외국계 보험사에 재보험을 들었을 것이다. 보험사가 침몰 원인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는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보험사는 오직 돈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게다가 외국계 보험사이면 아주 객관적으로 조사·판단하지 않았을까. 그 자료를 입수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텐데.

“봐야 되겠지. 1기에서는 우리가 조사하고 말고 할 틈도 없이 끝나버렸다.”

-아직도 세월호 음모설이 난무한다. 잠수함 충돌설·고의침몰설 등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밝혀야 하지 않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

-음모설의 원천이 되는 세월호 국정원 소유는 금방 확인이 가능한 것 아닌가. 그것 확인이 그렇게 어렵나.

“대한민국에서 가장 조사하기 어려운 곳이 국정원 아닌가. 검찰도 조사 못하고 1기 특조위도 국정원에 요청했지만, 조금 회신이 왔을 뿐이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 국정원 TF에서도 뾰족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1기 특조위에 국정원이 회신한 결과는 무엇이었나.

“소유문제를 질문한 것이 아니라, 왜 세월호로부터 보고를 받았냐고 질문하니까, 다른 큰 선박에 대해서도 보안점검을 한다는 자료만 받았다.”

-상식적으로 세월호가 국정원 소유냐 아니냐는 부과되는 재산세만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지 않나. 당시 야당 측에도 국정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고위간부 출신이 많고, 국정조사는 물론 나름 예산 감시도 받는 정부기관이 수백억 원짜리 국가재산으로 몰래 장사 할 수 있을까.

“(허~허) 당연히 세월호 소유는 청해진해운으로 나와 있다.”

세월호의 진실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특조위 임무이지만 한편 고민도 있을 것이다. 영화나 TV 등을 통해 음모설에 익숙해진 국민들에게 ‘진실’을 들이미는 것은 용기일 수도 있다. 세월호의 과적이나 항적, 조타 문제 등 한 가지 요인에 집중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재난 전체를 납득시키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를 분명히 매듭짓지 않으면 안된다.

앞서 시카코 대화재 사건을 언급한 이유는 미국은 이 재난을 통해 도시방재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 화재를 통해 건축법규와 도시설계에서 화재의 취약성을 철저히 보완했다. 우리가 세월호의 진실에 매달리는 이유도 한풀이가 아닌, 다시는 이런 재난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법적·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중고 선박 도입 문제, 화물 과적 문제, 고박(고정) 문제, 심지어 선장의 책임성 확보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보완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노무현 정부에서 과거사 위원회 활동

장 위원장도 “그렇다. 2기 특조위는 진상규명도 중요하지만 안전사회 건설을 강조했다”면서 “종합보고서에는 침몰 원인보다 앞으로 대안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같이 조사하는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도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가습기 제조사가 여러 군데이고, 40개 제품이 어떻게 쓰였는지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며 “공소시효가 지난 것도 많고 살균제와 피해자 인과관계가 입증 안된 것도 많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특조위는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한 보고서를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에도 보고해 정부와 국회의 입법활동을 통해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1963년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 언어학과 81학번이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군이 과 후배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1학년 과대표로 자신을 ‘자유의 종’이라고 소개했던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암울했던 80년대 그는 “학생운동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그냥 멍하니 4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뒤늦게 사법고시를 공부해 87년 합격했다. 그는 연수원과 군법무관을 마치고 1993년 변호사를 개업했다. 친구 따라 노동법학회에 갔다가 민변에 가입했지만, 그렇다고 노동법 전문 변호사의 길을 간 것도 아니다.

그는 1994년 위안부 할머니 소송을 맡으면서 과거사 사건을 맡기 시작했다. 그는 “위안부 할머니를 하다보니, 강제동원 피해자를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제주 4·3 피해자, 한국전쟁 피해자 등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이렇게 과거사 사건에 천착한 덕분에 노무현 정부에서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다. 2004년 강제징용위원회 비상임위원,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사무처장을 지냈다. 세월호 1기 특조위원에 이어 선체조사위원, 그리고 이번 2기 특조위원장을 맡은 것도 그런 경험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으로 2005년 5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시작한 강제노동 소송을 꼽았다. 그는 “1·2심에서 졌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 결국 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면서 “그러나 일본 기업이 재상고해 아직도 이어지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18년 동안 한 가지 사건, 피해자인 원고 측이 모두 사망한 소송에 아직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참 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집요함이 세월호 2기 특조위에서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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