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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중재자 아니라 주도자 되라'한겨레 평화선언'으로 남북이리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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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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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창현 / 발행인

   
 

‘트럼프쇼’가 따로 없습니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돌연 공개편지로 취소하더니 하루 만에 다시 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간을 보네요. 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물론, 세계 어느 지도자도 이렇게 변덕이 죽끓듯 앞을 가늠하기 힘든 경우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 자신도 ‘내 마음 나도 몰라’ 아닐까요. 25일 북미회담의 불씨를 살린 트럼프는 “북한이 게임을 하는 것 같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가 게임을 한다(Everybody plays games)”고 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트럼프는 자신을 ‘협상의 달인’이라고 칭하지만 실은 도박처럼 아슬아슬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그를 쳐다보는 많은 이들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있습니다. 아직 트럼프쇼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입만 바라보다 스타일을 구길 수도 있습니다.

북미정상회담을 엉거주춤 지지했던 아베가 회담 취소 소식에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을 존중하고 지지한다”고 했는데 하루도 안 돼 “다시 열릴 수도 있다”고 급선회하니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쓱한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김정은의 한바탕 사기쇼에 대한민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 놀아났다”고 비난했는데요. 트럼프가 다시 북미회담 용의를 표했으니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 못차리냐’고 비난해야 할까요.

요 며칠간의 소동은 미국과 북한이 서로를 신뢰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필연적 과정이라고 봐야합니다. 최선희 북 외무성 부상이 펜스 부통령을 ‘아둔한 얼뜨기’로 비난한 것을 놓고 북한이 너무 나갔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막말이 북한의 독특한 외교적 수사(修辭)라는 것은 미국이 더 잘 압니다. 억류하던 3명의 미국시민을 풀어주고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폭파하는 성의를 보이는데 고작 험구(險口) 몇 마디에 정상회담을 취소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트럼프가 공개서한에서 “최근 당신들의 발언들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으로 인해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회담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꼈다”고 한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이미 지난해 8월 트럼프는 북한으로부터 ‘망령난 늙다리’ ‘골목 깡패’ 등 펜스가 당한 것보다 훨씬 센 수위의 극언을 경험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회담 취소의 서한이 매우 정중하다는 사실입니다. ‘His Excellecy (각하)’ ‘Dear Mr.Chairman (위원장님 께)’ 다른 사람도 아닌 트럼프가 이렇게 예를 갖춰 편지를 보낸 것은 정말 이례적입니다. 트럼프가 북미회담을 정말 취소하고 싶었다면 자기 스타일대로 트위터에 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최상의 예우(禮遇)를 갖춰서 편지를 썼습니다. 내용도 절절합니다.

‘최근의 협상과 협의와 관련한 당신의 끈기와 노력에 대해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슬프게도..나는 이 시점에 당신과 만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느낍니다..우리 사이에 훌륭한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느꼈고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대화뿐입니다. 언젠가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매우 고대하고 있습니다. 세명의 억류자를 풀어주어 가족과 함께 있게 해주어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행동이었고 무척 감사한 일이었습니다..만약 당신이 마음을 바꾼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주세요..’

물론 트럼프다운 은근한 힘자랑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 같은 허세에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당신은 핵능력을 언급하지만 우리의 것은 너무나 규모가 크고 강력해서 나는 그것들이 사용되는 일이 없기를 신에게 기도하고 있습니다..세계는, 특히 북한은 지속가능한 평화와 위대한 번영과 부유함을 얻을 훌륭한 기회를 잃었습니다. 이 잃어버린 기회는 역사에서 진정 슬픈 순간입니다. 미합중국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 드림’

외형상 취소 편지이지만 내용은 한마디로 ‘북미회담을 취소하게 되어 정말 안타깝다. 당신의 후의에도 감사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협의를 지속해보면 어떻겠냐’고 은근한 제안을 한 것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이렇게 정중하게 편지를 보냈는데 북한이 부드럽게 화답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일부에선 북한이 고분고분 저자세로 나왔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요. 미국의 대통령이 보낸 서한에 북한은 최고 지도자의 답신 대신 김계관 제1외상의 ‘위임 담화’로 대응했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벙긋벙긋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북한이 무시하거나 강공모드를 취했다면 ‘국쏟고 발데는’ 형국이었는데 ‘이심전심(以心傳心)’ 화답했으니 자기 체면도, 회담의 불씨도 살리게 됐으니까요.

어쩌면 트럼프의 ‘취소 서한’은 펜스와 볼튼 등 강경한 네오콘들과 부정적인 여론을 자신의 것으로 되돌리기 위한 방책이었을지 모릅니다. 북한이 대화하겠다는 진정성을 재확인했으니 트럼프가 힘을 갖고 국면을 주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입니다. 지금까지 북미회담 성사를 위해 최상의 중재자(仲裁者)로 활약했다면 이제부터는 진정한 주도자(主導者)가 되어야 합니다. 북한과 미국이 샅바싸움을 벌이든 핑퐁대결을 하든 구경꾼이 되지 말고 한반도 문제의 주역으로 당당하게 나서라는 것입니다.

남과 북은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흉금(胸襟)을 털어놓은 ‘도보다리’ 단독대좌도 했습니다. 남북정상의 핫라인도 합의했는데 왜 통화를 못합니까. 격식을 차리는 통화가 아니라 서로 안부를 묻는 개인적인 통화라도 자주 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통역이 필요 없는 같은 민족 아닙니까. 통화는 비공개로 하고 필요한 내용이 있다면 합의하여 발표하면 됩니다. 만약 어느 하나가 약속을 위반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초래될 텐데 신의를 저버리는 일을 할 이유도, 필요성도 없습니다.

북한과 미국은 앞으로도 넘어야 할 고비가 많습니다. 이번 회담 취소 사태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습니다. 트럼프의 ‘기분파 전략’과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또 어떤 예기치 않은 ‘밀당’을 낳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남북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마주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화합과 공존공영(共存共榮)을 위한 시간표를 만들어 진행해야 합니다. 미국을 배제하고 중국을 왕따시키라는게 아닙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남과 북이 만들어 주변국들이 따라왔듯이 이번에도 남과 북의 지도자가 마음을 열고 합의를 이루면 주변국들이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최고존엄’이면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80% 이상이 지지하는 역대 가장 강력한 대통령입니다. 더구나 당신은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지도자 아닙니까. 트럼프를 칭찬하고 모든 공을 돌리는 립서비스야 얼마든지 좋지만 우리 민족의 이익에 반하는 일에 대해선 단호함을 보여야 합니다.

남과 북은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약속을 이행하고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대화만 잘 해도 미국과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한반도 종전협정, 북미평화협약을 기다릴게 아니라 우리끼리 “영원히 적대하지 않고 화합과 상생의 새 길을 걷는다”는 ‘한겨레 평화선언’을 통해 진정 위대한 한민족의 새 역사를 이끌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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