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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가(法家)식 총명과 민주주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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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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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지하철서 파는 물건 가격은 웬만해선 만원을 넘지 않는다. 몇 천 원짜리는 제법 사기도 하지만 만원을 넘으면 잘 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형 마트 같은 데선 만원은 고사하고 그보다 훨씬 비싼 것도 선뜻 산다. 왜일까?

하나는 믿을 수 없고 하나는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건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물건을 파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은 더욱 더 아니다. 만원이면 적다고 할 수 없는 가격이다. 그런데 물건에 하자가 있다면? 이동상인에게 산 물건은 보상받기가 어렵지만 마트서 산 물건은 그렇지 않다. 마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이동상인은 찾을 길이 막막하다. 수월하게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적지 않은 돈을 망설이지 않고 쓰게 했음이다. 볼펜을 살 때엔 굳이 애프터서비스를 따져보지 않지만 자동차처럼 단가가 센 제품을 구입할 때는 살뜰하게 따져보는 이유다.

전국 동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만면 가득 과하게 웃음 짓는 정치인들과 노상 마주친다. 늘 그랬듯이 그들은 ‘황송하게도’ 고개를 푹 숙이며 먼저 인사를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저들은 ‘이동형’일까 아니면 ‘마트형’일까. 언뜻 소속 정당이 있으니 마트형으로 보인다. 그런데 하자 발생 시 환불은커녕 하자 보수조차 받기 힘들다. 아니, 갖은 하자를 정치적 밑천으로 삼아대는 바람에 적잖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한다. 정당이 겉모양만 마트형이었을 뿐 실질은 이동형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투표, 그러니까 이동형 정치인과 정당을 ‘구매’했던 것일까. 답은 자못 명료하다. 파는 쪽에 믿음을 두지 못한 채 구매했다면 결국은 사는 쪽을 믿고 구매했다는 뜻이 된다. 저들이 이동형 정치인이요 정당임에도, 다시 말해 제품 하자 시 보상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음에도 소중한 한 표를 그들에게 행사했다면, 행사의 근거는 저들이 아닌 나에게 있을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럼 나의 무엇을 믿고서 그들에게 한 표를 행사한 것일까.

‘한비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신불해라는 법가가 한 말이다. “독자적으로 봄을 일러 눈이 밝다(明)고 하고, 독자적으로 들음을 일러 귀가 밝다(聰)고 한다. 그렇게 되면 능히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되니 천하의 주인이 될 만하다.” 본래 눈귀의 밝음, 곧 ‘총명’은 대자연의 섭리나 인간사 사리 등에 밝아 최적의 결과를 자아내는 역량을 가리켰다. 신불해는 법가답게 이를 정치적 장으로 끌고 와서는, 군주다움의 조건으로 내건 ‘독자적 판단’의 선행조건으로 제시했다. 독자적 판단을 가능케 하는 총명을 갖추고 있으면 군주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는 논리다.

이를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에 맞게 바꿔 읽으면, ‘정치적 주인’ 그러니까 주권자가 되고자 한다면 내 안에 총명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동형 또는 마트형 같은 외적인 것에서 선택의 근거를 찾음이 아니라, 총명 같은 내적인 것에서 근거를 찾을 때 비로소 국가의 주인, 곧 주권자라고 할 만하다는 통찰이다.

마침 모레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일이다. 시도 교육감 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도 함께 치러진다. 전해 비해 이번 선거에선 외부로부터 조장된 혐오나 증오, 그리고 선거철이 되면 지독하게 극성을 부리던 지역 간, 세대 간, 이념 간 갈등 등에서 근거를 찾아 투표하던 분위기가 꽤 누그러졌다. 어느 때보다 주권을 행사하는 나의 총명이 힘을 발휘하기에 좋은 조건이 무르익은 셈이다.

선거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뽑는 것이다. 겉으론 사람을 선택하는 양 보이지만 실상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표방하는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다. 선거는 더 나은 미래의 요람이라는 주장이 성립되는 이유다. 뽑은 사람이 바뀌었을지라도 그들이 구현하려는 가치가 이전 사람과 차이가 없다면 혁신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안에 법가식 총명 같은 독자적 근거를 갖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장밋빛 ‘공약(空約)’이나 가짜 뉴스 등에 흔들리지 않고, 그들이 겉으로 드러낸 언행을 가로질러 그 이면에 내재된 가치를 직시할 수 있기에 그렇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때, 그 꽃을 온전히 피우는 것이 바로 나의 총명함이라는 얘기다.

곧 나의 총명이 민주주의의 꽃인 셈이다. 물론 이런 통찰이 사뭇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찬찬히 따져보면 총명은 물론이고 사회적 제 가치나 진리, 당위에 대한 믿음 같은 내면적 역량이 놀랍도록 우리 삶에 깊숙이 삼투되어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나의 총명을 근거로 정치인을 선택하는 방식엔 이런 장점도 있다. 선택의 근거를 내가 제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취함으로써 선택의 성패를 ‘자기 주도적’으로 구현해갈 수 있다는 장점 말이다.

앞으론 잘하겠다며 큰절을 넙죽하고 사죄드린다며 무릎을 털썩 꿇어도 당선되고 나면 그들의 행동과 말을 ‘나’가 제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총명 같은 내적 근거에 기댐이 실패 확률을 훨씬 줄일 수 있는 방도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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