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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된 일본 육아용품서 ‘엄마 응원’이 사라진 이유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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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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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 도쿄 특파원

   
 

최근 만난 일본의 한 유명 글로벌 기업 간부는 신제품 공개를 앞두고 당황했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일본의 20, 30대 젊은층을 겨냥하겠다며 또래의 젊은 부부를 모델로 내세우려 했다. 남편이 육아에 지친 아내를 위해 제품을 건넨다는 내용의 광고 아이디어가 오갔다. 그런데 광고 대행사가 우려를 나타냈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모습이 20, 30대 젊은층의 관심을 끌지 못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맞벌이 시대’에 여성만 육아의 주체로 봐선 안 된다는 우려였다. 그 간부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표현했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데 대한 자책감이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본 내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한 아기 용품 제조업체는 유아용 물티슈 제품 측면에 적은 ‘전국의 엄마를 응원합니다’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제품이 나온 지 12년이 지나서야 문구를 없앤 이유가 뭘까.

5월 초 일본의 한 여성이 “아기 엉덩이를 닦는 사람은 엄마만이 아니다”라며 해당 업체에 항의 메일을 보냈다. “왜 육아 책임을 어머니들에게만 지도록 하는가. 다른 양육자들에게 소외감을 주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이 문구를 ‘아이를 키우는 모든 사람을 응원합니다’로 바꾸고 싶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서 서명 운동도 벌였다. 서명 건수가 한 달 만에 5000건을 넘을 정도의 반응이 이어지자 업체는 지난달 말 응원 문구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사회 변화 속에서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 초 한 어린이 TV 프로그램에 나온 노래도 논란이 일었다. ‘나는 엄마니까(あたし, おかあさんだから)’라는 제목의 이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독신이었지. 엄마가 되기 전/하이힐 신고 네일아트 받으며 멋지게 일했지… 지금은 아침 5시에 일어나 좋아하는 반찬 만들어 줘/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힘내….”

“집안일을 왜 엄마만 하냐”는 항의가 이어지자 프로그램 제작진은 이 노래를 삭제했다.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 맞벌이 부부 증가 등으로 육아를 더 이상 ‘여성의 몫’으로만 보지 않는 세계적인 흐름이 있다. 일본 사회도 최근 이 조류를 탄 듯하다. 성차별, 성 역할 고착화에서 나타나는 불합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젊은 일본 여성들의 노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4월 말 도쿄 신주쿠(新宿)에서 열린 여성 인권 집회에서 만난 인권 운동가 미조이 모에코(溝井萌子) 씨는 “사소한 것부터 고쳐 나가다 보면 일본 사회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도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측근 중 한 명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최근 지방 강연회에 참석해 “남성이 육아하는 것은 아이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성은 복지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여성을 “아이 낳는 기계”라고 말한 야나기사와 하쿠오(柳澤伯夫) 전 후생노동상 등 출산 및 육아와 관련한 자민당 정치인들의 ‘망언’ 역사는 오래됐다.

말이 곧 그 사람의 인식 수준이다. 저출산 해결, 여성 인재 등용을 외치는 아베 정권에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가 무엇인지, 일본 국민은 아는데 정권을 쥔 그들만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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