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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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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트럼프의 등장으로 지구촌의 정치풍경이 상당히 어수선해졌다.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를 만나 웃으면서 악수하지만 그를 상대하는 정상들의 속내는 결코 편치 않다. 전후 세계질서 수립에 일익을 담당했던 동맹국 독일의 메르켈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이 또 화제다.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앞서 트럼프는 독일과 러시아가 함께 추진하는 지하가스 연결사업을 두고 독일이 러시아에 완전 종속된다고 내놓고 비판했다. 그런 비판을 했던 트럼프 자신은 나토 정상회의가 끝나는 길로 헬싱키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는 이 정상회담을 세계 미래를 위해서 양국의 현안 전반에 걸쳐 격의없이 토론한, 아주 건설적인 대화라고 평했다. 특히 북·미 정상회담이 세계 평화를 위한 중요한 성과라고 두 정상이 덕담을 나누자 독일의 전 사민당 당수와 외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가브리엘은 ‘독재자 김정은’은 감싸면서도 오랜 동맹국 독일의 총리 메켈은 내쳤다고 트럼프를 여과없이 비판했다. 그 역시 외무장관 시절에는 푸틴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지구적 헤게모니 쟁탈전의 두 주역인 미국과 중국의 자기중심적인 논리는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8개국이 한 울타리 안에 사는 유럽연합에서 이 문제는 더 복잡하다. 영국의 ‘브렉시트’나 난민 문제로 야기된 심한 내홍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는 자기중심을 확정하는 데 있어 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자기중심의 논리가 분단된 상태의 남북한에 각각 한정된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복원하는 과정도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6·15선언’과 ‘10·4선언’도 있었지만 지속가능한 수준까지는 진입하지 못했다. 미국, 중국,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한 국제사회도 이런 민족공동체 복원과정을 환영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외교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판문점선언’은 이러한 정황 속에서 우선 남북이 함께 자신의 행동반경을 다시 확대하자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개선은 아직 기대수준에 많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원칙의 구체적 내용의 규정, 실행 방도와 일정표를 두고 아직도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에 남북관계의 개선도 어쩔 수 없이 묶여 있다. 또 남북관계는 어느 한쪽의 의지에 의해서만 개선될 수 없고, 시간과 인내도 필요하다. 그러나 남북 당사자가 과감하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일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의 재가동이나 이산가족 재회의 정례화 같은 일이다.

근자에 들어 현 정부의 개혁의지에 대해 우려와 함께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재벌개혁과 부동산·노동정책의 실종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체제 자체에 내재하는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헝가리 출신의 경제학자 칼 폴라니(1886~1964)는 우리 생활의 근본인 노동, 땅 그리고 돈의 철저한 상품화는 반드시 사회적 저항을 낳게 마련이라고 그의 저서 <위대한 전환>에서 지적했다. 적정한 수준의 최저임금, 일자리 창출, 청년실업 해소, 부동산 투기와 누적되는 가계부채를 포함한 민생문제가 바로 그런 위험의 징표다. 이를 원만히 해결치 못하면 개혁 지지세력도 머지않아 그들의 등을 돌리게 된다.

독일에는 이른바 ‘일요설문’이라는 용어가 있다. ‘오는 일요일에 선거가 있다면 당신은 어느 정당에 당신의 표를 던지겠느냐’는 설문을 의미한다. 최근 발표된 결과는 현재 집권당인 기민당·기사연합이 30%, 대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사민당 18%, 야당인 녹색당 12%, 좌익당 10%이고, 우파인 ‘대안당’은 17.5%로 ‘사민당’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은 51%로 나타났다. 난민 문제가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해 62%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45%, 자유한국당 18.7%, 정의당은 10.5%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최근 나타났다. 현 정부나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높다. 그러나 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의 하락이 최저임금이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중요한 민생 문제와 직접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난민 문제처럼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지지율의 하락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오늘 세계 도처에서 발흥하는 포퓰리즘은 본질에 있어서 신자유주의가 낳은 ‘부익부빈익빈’의 결과에 대한 정치적 대응양식의 하나다. 삶의 기본적 영역으로부터 내몰린 대중을 상대로 기존의 정치구조와 이를 대변하는 정치엘리트를 겨냥한 집중적 공격과 대중적 선동은 선거결과로 곧 연결되어 정권이 바뀐다. 제3세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비교적 안정된 정치구도를 구축해왔던 유럽에서도 파시즘 시절에나 가능했던 현상이 종종 나타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 등 곳곳에서 난민 문제를 앞세운 극우세력의 약진이 바로 그렇다.

가히 지구적 현상이라 볼 수 있는 이런 정치행태 변동을 분석한 케네츠 로버츠는 ‘위로부터’의 포퓰리즘과 ‘밑으로부터’의 포퓰리즘을 구분한다. 전자는 노련한 소수의 저항 엘리트가 조직화되지 못한 대중을 상대로 기득권층을 집중 공격하면서 대중을 우선 투표장으로 끌어들여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후자는 오히려 사회운동적 성격이 강한 정치적 저항이 정권교체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나 최근 유럽에서 나타나는 정치형태는 전자에 가깝고, ‘촛불혁명’의 결실인 현 정부의 탄생은 후자의 경우라 볼 수 있다. 현 정부는 위기적인 상황 속에서 등장했다가 이내 곧 정치무대에서 사라지는 ‘과도정부’가 아니다. 여전히 높은 대중적 지지도는 현 정부가 아직은 안정적인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제기된 난관을 빨리 타개하려고 정치공학적인 계산에 의존, ‘연정’이니 ‘협치’라는 생각을 떠올릴 상황은 아니다. 이런 발상은 한국 정치의 왜곡된 구조의 핵심에 있는 - 여당도 포함한 - 정당정치의 적폐를 비켜가는 미봉책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깨끗한 정치에 의해 건설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꿈을 키웠던 노회찬 의원의 안타까운 죽음은 정치개혁의 절박함을 다시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현 정부가 ‘촛불혁명’이 지켜낸 정의와 평화의 뜻을 ‘처음처럼’ 받들어 시종일관 개혁의 길로 매진하는 것이 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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