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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집으로 올 때까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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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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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 논설위원

   
 

미국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 의 모토는 ‘그들이 집으로 올 때까지(Until they are home)’다. 미군은 단 한 명의 실종자 또는 전사자를 찾기 위해 세계 어느 곳이든 찾아간다. 2008년 5월 JPAC(DPAA의 전신) 수중탐사팀이 1950년 추락한 전투기 조종사의 유해를 찾으려 당산철교 일대 한강 바닥을 샅샅이 훑던 모습은 한국사회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적진에 포로로 잡혔던 미군의 “언젠가는 조국이 나를 찾으러 올 것으로 믿었다”는 신뢰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유해를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과정도 존엄, 그 자체다. 관이 비행기에 들고 날 때마다 공항 하역 직원은 손을, 조종사는 모자를 가슴에 얹는다. 2009년 10월 29일 오전 4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 활주로에 서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장병 18구의 운구가 모두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거수경례 자세를 유지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일 하와이로 날아가 북한이 인도한 6·25전쟁 참전 미군 전사자 유해 55구를 맞이했다. 펜스 부통령은 참전 미군들을 영웅으로 부르면서 “어떤 이들은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들이 절대 잊혀진 적이 없음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C-17 수송기가 미군 유해를 싣고 원산을 이륙한 직후 백악관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5300명의 미군을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이 재개되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한 대목이다. 시인은 1950년 피란 중 야산에서 국군 전사자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시를 지었다. 납북 국군포로와 실종자 7만3985명 중 전사자 유해 발굴이 시작된 2000년부터 수습된 시신은 1만2000여 구(북한군 등 포함)다. 여전히 수만 명의 국군이 이 땅 어딘가에 비목(碑木) 하나 없이 65년 넘게 묻혀 있을 것이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영웅’에 대한 미국의 예우에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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