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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외교’ 대신 ‘가능한 외교’로 전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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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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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 연세대 특임교수, 전 주미대사

김정은 답방도 북·미 회담도 불투명 / 올해 성급하고 절박한 외교 해와
냉혹한 이익 추구 외교현실 직면 / 북·미 간 교착상태에 진전 없을 듯
새해에는 올해와 다른 외교 기조로 / 현실 직시하면서 비핵화 관리해야

   
 

벌써 11월 말이다. 한국 외교가 숨 가쁘게 달려온 2018년이 저물고 있다. 되돌아보면 비핵화에 대한 기대 속에 우리의 노력으로 가슴을 뛰게 하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트럼프·김정은 간의 ‘말의 전쟁’ 때보다 한반도 주변의 긴장이 크게 완화됐다. 커다란 성과다.

그러나 긴장 완화를 넘어 평화 정착을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은 앞으로 달성해야 할 과제다. 지난 9월의 평양선언에서 다음 남북 정상회담은 서울에서 열기로 했다. 하지만 12월이 다 돼가는데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종전선언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들이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북·미 정상회담이 언제 열리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8말 9초’의 전환점에 놓인 한국 외교는 어디로 갈 것인가.

현재 상황은 정확히 1년 전에 시작됐다. 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형 미사일의 성공적 발사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북한의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다. 이제 경제가 중요해진 북한은 도발에서 협상으로 생존전략을 바꾼다. 핵 무력의 완성 이후에는 더 이상 핵과 미사일 실험이 필요없어진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기가 유용한 외교 카드가 된다. 이를 이용해 북한은 한국·중국·미국과 정상회담을 잇따라 엮어낸다.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은 정확히 중국이 그동안 추진해 온 쌍중단(雙中斷), 즉 북한의 실험 중지와 한·미 간의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끌어냈다. 북·중 간의 전략적인 이해가 일치된 가운데 북·미 간에 만들어낸 결과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본토를 보호하고자 했다. 북한의 추가 실험이 없으면 미국 본토는 북한의 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북미 대륙을 노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무기는 재진입과 소형화 등 추가 실험이 있어야 비로소 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트럼프는 싱가포르 기자회견을 하면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하고 북한의 실험 중지와 맞바꿨다. 그리고 비핵화 자체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북한이 쌍중단에 동의해도 현재 가진 스커드와 노동미사일, 수십 개의 핵무기 즉 완성된 핵 무력은 그대로 남는다. 본격적인 북한의 비핵화가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여기서 북·미 간의 본질적인 입장 차이가 드러난다. 북한은 실험 중지와 실험장 파괴가 비핵화 과정의 시작이라고 보고 경제제재의 해제를 요구한다. 지난 9월 평양선언도 경제제재 해제를 예상하고 이뤄진 것이다.

그런데 경제제재 해제가 쉽게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국은 경제 제재 해제가 결국 북한을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정상적인 핵보유국으로 만들어 줄 것으로 본다. 그래서 비핵화 조치가 있어야 경제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 또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같은 해결책을 미리 정해 놓고 협상에 임해 연역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취한다. 그런데 북한은 생존 전략상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이러한 방식의 비핵화 방안을 제시하기 어렵다.

전환점에 처한 한국 외교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돌이켜보면 2018년에 한국 외교는 성급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추진돼 왔다. 북한이 변할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긴박감을 많은 이가 갖고 있었다. 특히 김 위원장이 군부 등 내부의 이견에도 과감하게 취하는 정책인 만큼 시기를 놓치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달아난다는 절박감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과 미국의 국익을 정확히 파악하고 ‘가능한 외교’를 펴는 대신, 종전선언같이 우리가 ‘원하는 외교’를 설득과 요청의 방법으로 추진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설득이 아니라 냉혹한 이익을 추구하는 외교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12월에 북·미 간의 교착상태에 진전이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2019년 새해에는 2018년과는 다른 외교를 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달성하려고 민족끼리 애쓸 것이 아니라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입장에서 미국과 북한의 입장을 파악하고 가능한 외교를 펴야 한다. 즉 중요한 남북대화를 유지하고, 북·미 관계의 변화를 보면서 북한이 다급한 경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 관찰해야 한다. 북한의 미래는 궁극적으로 핵이 아니라 경제에 달려 있다. 핵과 경제 사이에서 북한이 안고 있는 딜레마는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없다. 북한만이 처리해 나갈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남북관계와 비핵화 문제를 관리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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