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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합의가 만든 비극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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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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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훈 / 정치부 차장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들어갈 때부터 꺼림칙했다. 정상 국가 간 합의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못 믿겠으니 이것으로 끝’이라는 점을 분명히 강조하고 싶었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5년 12월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기로 하면서 만든 합의문은 이때부터 불씨를 안고 있었다. 정부가 지난달 21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기로 공식 결정하면서 위안부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위안부 합의 파기라는 비난을 의식해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 처리 문제를 정부가 명쾌하게 밝히지 않은 점은 외교적 해법이 마땅치 않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악화하고 있는 한·일 관계를 풀고자 위안부 문제가 걸림돌이 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한·일 관계 악화가 중국 견제라는 안보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은연중 합의를 종용한 미국의 시선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2014년 4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12차례 양국 외교부 국장급 협상은 그래서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결렬 선언이 아니라 시한에 쫓기듯 공식 협상 라인이 아닌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국장 라인을 가동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 결과는 어떤가. 실무 협상을 맡았던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국장은 싱가포르 대사로 영전했지만 정권이 바뀐 후 결국 문책성 귀국을 해야 했다. 이 실장은 국정농단과 맞물려 형사처벌을 받았다. 일본의 대응은 신경질적이다. 자민당의 ‘일본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특명위원회’ 위원장인 나카소네 히로후미 전 외무상은 “한국은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망언을 늘어놓기도 했다. 최소 6000여명의 사람을 상대로 각종 인체실험을 자행해 홀로코스트에 버금가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를 부인하는 ‘국가’의 전 외무상이 할 소리는 아닌 듯하다.

일본의 감정적 대응에 정부는 투트랙 전략만을 강조하며 로키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일본에 제대로 된 지적을 못 하는 황당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심지어 일본 외무상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제대로 된 답변을 갖고 오지 않으면 일본을 방문해도 곤란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월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이어 화해치유재단 해산, 미쓰비시 강제 동원 피해자 판결 등 한·일 관계에 악재만 계속되고 있다. 한·일 간 과거사 문제의 근원은 따지고 보면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가 불법이라는 정부 입장을 관철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의 일관성 있는 대일 정책이 있었는지도 따져 볼 만하다. 한·일 관계가 좋았다는 김대중 정부 이후 역대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일 정책을 내놓은 것이 있었던가.

근시안적인 대일 정책을 편 박근혜 정부를 대신한 문재인 정부라도 모호한 로키 대응 외에 장기적인 대일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일 뉴질랜드 방문길에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일 관계의 투트랙 전략을 언급했다. 북핵 문제 해결에 쏟는 에너지만큼 대일 관계 설정에도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또 다른 비극은 언제든 계속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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