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 / 전 모스크바한인회장]

조선독립운동의 전설적인 영웅인 김경천 장군의 탄생 130주년 기념식이 10월 26일 모스크바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이 기념식은 김경천 장군의 일기를 모은 『선택(김경천 일기)』의 출판기념회를 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 행사는 ‘고려인독립유공자협회’와 모스크바 주재 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의 주관으로 개최되었다.

행사에는 최 발렌틴(러시아독립유공자협회 회장) 김 뱌체슬라브(고려인연합회 회장) 갈리나 필랸스카야(김경천장군 외손녀)박 벨라(동방학연구소 연구원) 김 나탈리아(고등경제대 한국학과장) 하용국 영사, 안동진(한국외대 연구원) 김은희(청주대 연구원) 김원일(정치학박사, 전 모스크바한인회장)등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최 발렌틴 회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최 발렌틴 고려인독립유공자협회 회장은 항일독립운동에서의 김경천 장군의 위상과 그 후손의 현 주소에 대해 언급하며, 1920~30년대 연해주와 시베리아를 중심으로 전설적인 위명을 날렸던 김경천 장군의 일대기를 회고하였다.

최 발렌틴 회장에 이어 한국대사관의 하용국 영사와 '고려인연합회' 회장 김 뱌체슬라프, 모스크바 정부의 수슬로바 마리나 등이 김경천 장군의 일기 출간과 130주년 기념식을 축하하는 내용의 환영사를 하였다.

본식에서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박 벨라 교수가 ‘고려인의 민족해방투쟁’에 관해 기조 발제를 하였다. 또한 김경천 장군의 손녀 필랸스카야 여사가 ‘김경천. 인생이 업적이다’라는 내용으로 후손이 간직했던 김경천 장군의 사진들을 공개하고 KBS <역사스페셜>에서 방송되었던 ‘백마 탄 김장군, 김경천! 시베리아의 전설이 되다’의 주요 장면을 상영해주면서 김장군의 인생을 소개하였다.

김경천 장군은 조선의 무관 집안에서 태어나 동경으로 유학 가서 일본군 육군사관학교에 다녔다. 조선이 망하자 독립운동을 위해 임관하자마자 탈출하여 시베리아로 가서 항일조선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백마 탄 김장군’으로 명성을 떨쳤다. 김경천 장군의 친필일기 <경천아일록>은 소련에서 정치탄압으로 체포될 당시 비밀경찰에 의해 압수되었다가 복권된 후 후손이 돌려받았다.

이 자료는 1919년~1925년까지의 수기로 만주와 시베리아, 연해주의 조선독립운동에 대한 전투일지이자 동료와 부하 등에 대한 애정과 헌신이 담긴 생생한 증언이다. 서울-동경-만주-연해주-카라간다-모스크바에 이어 1942년 코틀라스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기까지 김경천 장군의 인생항로가 사진과 영상으로 펼쳐지자 참석자들은 깊은 감동과 안타까움으로 눈가를 적셨다.

『선택』이라는 책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김경천 장군은 '나의 인생은 왜 이다지도 굴곡이 많은가'라는 자조 섞인 고백을 하면서도, 대일본제국의 장교 출신으로서 식민지 조선에서 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친일의 길을 버리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항일의 길을 선택하였고 그 길에서 참담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길은 항상 조국을 향해 있었지만 결국 해방된 조국에 닿지 못하고 낯선 이국의 수용소에서 끝나버린 길이었기에 더욱 가슴 아리다.

다행스러운 일은 김경천 장군의 아내 유정화 여사가 낯설고 엄혹한 소련 땅에서 홀로 자녀들을 지켜내고 키우면서 아버지를 잊지 않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자긍심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선택(김경천 일기)』 러시아어 출간은 항일과 독립을 위한 투쟁의 길을 택한 독립운동가들의 선택을 후손들이 기억하고 있으며 조선 독립은 그런 선택들의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이라는 것을 다음 세대에 알리는 노력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조국으로부터도 잊히고 소련으로부터도 삭제되었던 김경천 장군의 노력이 늦게나마 세상의 인정을 받아 다행스럽다.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독립유공자들이 하루 바삐 세상의 한가운데로 걸어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