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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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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호 / 논설위원

지난 주말에 읽은 역사책에서 교훈을 얻었다. 역사평설 `병자호란`이다.

   
 

저자 한명기 씨는 조선왕조실록과 개인 소장 중인 도판까지 샅샅이 인용해 영상을 보는 듯 상황을 재현했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로 이어지는 40여 년간 조선은 네 번의 전란에 휩싸였다.

왜군에 두 번 짓밟히고 30년 후 여진족에게 두 번 당한다. 1627년 3만 후금군은 의주를 넘어 단숨에 한양까지 휩쓸었다. 강화도로 피신한 인조 임금은 항복하고 형제 관계를 맺는다. 10년 후 후금은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황제에 오른 태종이 12만 군사를 끌고 압록강을 넘어왔다. 인조는 45일간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잠실 부근 삼전도에 설치된 수항단(受降壇)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황제에게 인사를 올리는 의식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다. 광해군 때엔 후금과 명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 외교를 펼친 덕분에 전란을 피했다. 인조는 명에 대한 사대를 내걸며 반정을 일으켜 정권을 잡아 놓고 명분만 내세우다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다. 왕세자가 인질로 잡혀갔고 세폐(歲幣)라는 조공을 바치느라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 학살당한 백성이 몇인지 헤아리기 힘들다. 50만여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탈출하다 붙잡히면 가차 없이 죽였다. 살려도 발뒤꿈치를 자르는 혹형을 내렸다. 국경을 넘어왔는데 조선 관리들이 되레 돌려보냈다. 1인당 은화 5냥에서 시작된 조선 사람 몸값이 1500냥까지 치솟았다. 임진왜란 후엔 일본에 잡혀간 10만여 명 가운데 6000명을 송환시켰다. 병자호란 뒤엔 송환은커녕 도망 나온 백성을 청에 팔아넘겼다.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40여 년간 조선은 강대국 간 패권 다툼을 전혀 읽지 못했다. 동아시아 유일 패권국이었던 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일본은 명 정벌을 빙자해 한반도를 유린했다. 후금은 기울던 명을 확실히 눌러버렸고 그 와중에 조선을 짓밟았다. 대세를 정확히 읽고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잘 저울질했어야 하는데 실패했다.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으면 약자로서 생존을 위한 외교 전략이라도 가졌어야 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인조는 국가 보위가 아니라 정권 보위에 급급했다. 광해군의 절묘한 줄타기 외교를 비아냥거리고 큰소리만 쳤다가 많은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백성에게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오늘날 현실로 돌아와보자. 미국은 유일한 슈퍼파워의 지위를 내줬다. 중국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군사적으로 부상하며 미국과 어깨를 견줄 만큼 커져 G2시대를 열었다. 일본은 평화헌법을 팽개치고 다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의 행보를 불사하며 부산하다. 도널드 트럼프, 시진핑, 아베 신조 등 강한 리더십을 내세운 스트롱맨들이 펼치는 마초 스타일 외교가 국제 정치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올 상반기 극적인 회동으로 세계의 주목을 끈 뒤 다시 만나겠다고 공언한 미·북 정상이나 남북 정상 모두 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무성의에 질질 끌려다닌다. 비핵화 논의와 실행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마주 보며 달리는 열차인 양 무역전쟁으로 한판 붙을 듯하던 미·중은 정상끼리 마주 앉더니 90일간 휴전을 합의했다. 각자 국익을 챙겨 놓고 미·중은 언제 싸웠냐는 듯 서로를 치켜세웠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대일로 공동건설에 우리의 참여를 강하게 압박했다.

자기편에 들어올 건지 선택하라는 듯했다. G20 정상회의 때 열린 한미 정상 간 만남을 풀 어사이드라고 불리는 약식 회담으로 하는 걸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을 가까운 친구로 간주하지 않는 듯했다.

임진왜란에서 병자호란으로의 40여 년은 420년 전 일이지만 지나간 과거에 그치지 않는다. 국제질서의 판이 바뀌던 시기에 조상들과 지금 우리의 대응은 얼마나 다른가. 구한말 청 외교관 황준헌이 제시한 조선책략처럼 `연미(聯美) 친중(親中) 결일(結日)`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선택지인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치열한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하나. 강대국의 파워게임 속에 선택의 기로에 몰릴 경우 우리에게 생존을 위한 히든카드는 있는가.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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