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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日의 대가'는 비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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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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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현 / 논설위원

日의원연맹 탈퇴, 군사 정보 차단 주장 등 일본 내 여론 최악
올 10월 대법원 징용 판결 후 계속 손 놓다간 큰 禍 겪을 것

   
 

사고나 재난으로 피해가 예상되는데 "별일 아닐 거야"라고 뭉개다가 참사가 반복되는 이유를 사회심리학자들은 '정상성 편견(normality bias)'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과거 여러 번 경험했다는 기억에 사로잡혀 더 큰 위기에 직면하고도 자기 편한 대로 상황을 인식하려는 심리적 경향은 '경험의 역(逆)기능'에 속한다. 일본을 대하는 문재인 정부의 대응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지난 10월 30일 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지극히 '대한민국 법원다운' 판결이다. 외교 조약까지 용훼(容喙)할 수 있는 사법권을 가진 법원은 OECD 국가에는 없다고 들었다. 50여 년간 유지해온 합의나 약속을 뒤집으면 상대가 반발하고 관계가 악화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니었던가. 그런데 한국 외교부는 "일본 측의 과도한 반응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되받았다. 뺨을 때려놓고 맞은 사람이 화를 낸다고 나무라는 격이다.

그동안 한·일(韓日) 관계가 악화되면 예외없이 대가를 치러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일어업협정이 자주 거론된다. 김영삼 대통령 퇴임 한 달 전인 1998년 1월 23일, IMF 위기와 정권 교체기를 틈타 일본 정부는 협정 파기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어 김대중 정권은 '무협정 상태'를 피하기 위해 일본이 요구하는 대로 독도 주변 '공동수역'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버르장머리' 발언 등 도를 넘은 대일 강경 외교가 빚은 참사라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다.

김대중 정권은 한·일 우호 무드를 조성했지만, 일본 측 요청을 무시하고 일본인 납치범 신광수를 북한으로 돌려보내자 일본 정부는 재일 한국인 은행 설립 거부와 정보 공유 거부로 맞섰다. 그 이후로도 일본 측은 통화 스와프 중단 등 금융 제재 카드를 수시로 들이밀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외교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하자 재일 한국인에 대한 세무 사찰 강화, 유학생 연수 지원 중단 같은 조치가 새로 등장했다.

지금 일본 여론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다. 징용 판결에 이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까지 이뤄져 최악의 한·일 관계는 더 깊은 나락(奈落)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은 국가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는 극언이 나오고, 한국과 마주 앉기 싫다며 한일의원연맹을 탈퇴한 의원도 있다. 안보·군사 정보를 차단하자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비자 면제 조치 폐지 같은 카드도 꺼내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와 지원 중단은 이미 시작됐다.

분명한 사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과거사 피로 증후군과 중국 경사(傾斜)론 등 실망이 겹쳐 한국을 멀리하자는 분위기 속에서 일본이 먼저 각종 협정 폐기에 나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우리 정부의 외교 책임자들은 일본은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나라쯤으로 대접한다.

대법원 첫 판결 후 침묵을 지켜온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처음으로 한·일 관계의 '미래 지향'을 강조하면서 "과거사 문제는 별도"라고 못을 박았다. 이낙연 총리는 "관계 부처 및 전문가들과 논의해 대응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으나 한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한·일 관계야 늘 그렇지 뭐." "미국이 양국 간 조정에 나서주겠지." 한국 외교부 관리들의 속내를 들어보면 과거 패턴대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는 '정상성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국제 무대에서 지금까지 한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해온 일본이 태도를 바꿀 때, 한국의 외교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밑천이 금방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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