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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가 베트남에서 배워야 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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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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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 국제외교안보팀 기자

   
 

북한이 활발하게 친선 관계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에 베트남이 있다. 이용호 외무상이 지난달 29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찾았다. 북한에 베트남은 이른바 미제와 싸워 적화통일을 완성했던 나라이니 ‘롤 모델’이나 다름없다. 6일자 노동신문은 “자력갱생, 자급자족은 우리 당의 일관한 투쟁 전략”이라고 주장했는데 베트남이야말로 그런 측면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자력갱생’의 나라다

그런데 베트남은 미국과 계속 적대해서 현재를 만든 게 아니다. ‘도이머이’라는 개혁·개방 정책으로 미국을 친구로 만들어서 개혁에 성공했다는 게 더 정확하다. 2년 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을 공식 방문했을 때 하노이 식당에서 분짜를 먹는 장면이 전세계에 타전됐는데 이게 베트남의 개혁·개방을 각인시키는 완결판이었다.

베트남은 과거 19년간 미국의 강력한 경제 봉쇄 정책하에 있었다. 베트남전쟁(1960~75년)이 끝나자, 미국은 베트남의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무역·금융·무기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독자제재(금수조치)를 부과했다. 이 때문에 1980년대 베트남은 궁지에 몰렸다. 캄보디아를 침공했다가 중국과 전쟁을 벌였고, 강력한 우방이던 옛 소련은 점차 세력이 약화했다. 미국의 제재로 베트남 경제는 삼중, 사중고에 시달렸다. 핵 개발로 인해 국제무대에서 외통수에 몰렸던 북한과 비슷했다.

결국 베트남 공산당은 86년 제6차 당 대회에서 도이머이를 채택했지만 시행 초기엔 별 힘을 못 받았다. 그러다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면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은 ‘선(先) 조치→후(後) 보상’의 협상 원칙을 철저히 준수했다. 미국 내 ‘베트남 증후군’으로 일컫는 반베트남 정서와 워싱턴 강경파들이 적국이었던 베트남과의 수교를 극렬히 반대한 탓도 있었다. 지난달 방한했던 첫 주미 베트남 대사 레 반 방은 “80년대 말부터 꾸준히 미군 유해 송환을 하면서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의 군 철수(89년)도 미국 등 국제사회를 향한 조치였다. 이후 빌 클린턴 정부 때인 94년 2월 미국은 금수조치를 해제했다. 이듬해 베트남과 미국은 국교 정상화를 했다.

2017년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2343달러로 북한(약 1200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미국과 전쟁을 벌인 베트남도 선 조치로 미국과 신뢰를 쌓았다. 북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싶다면 베트남을 보면 된다. 어디가 길인지는 하노이의 스카이라인에 답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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