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원 / 편집이사 겸 세계지식포럼 총괄

요즘 로펌들 사무실에는 한국을 떠나려는 기업들의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국내외 기업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은 한국에 계속 남아 있다간 `서서히 끓는 주전자 안 개구리`처럼 삶아지고 말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다 근로시간 단축 충격을 견딜 수 없다.

특히 민주노총을 축으로 한 노사 갈등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인 직접투자 비율이 1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5위에 이른 것은 외국 기업들의 `탈한국` 분위기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한국을 떠나는 기업들은 주로 어디로 가는가. 외국 기업 중에는 본국으로 철수하는 곳도 있지만 한국 기업들 중 많은 곳은 베트남 쪽으로 향해 있다. 벌써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작년 6400여 개에서 현재는 8000개로 늘었고 머지않아 1만개를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기업이 떠난다는 것은 경제의 성장동력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국부가 밖으로 새고, 좋은 일자리는 만들어지질 않는다. 이는 명백한 정책 실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였다. 어떤 정치인은 조공협상이라며 단식농성까지 했고, 많은 여당 의원들도 동조했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들도 잇달아 노 전 대통령을 공격했다. 결과는 어땠나. 미국보다 한국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당시 한미 FTA에 반대했던 인사들은 전혀 반성이 없다. 글로벌한 흐름도 못 읽고, 정확한 분석 능력도 없었으니 부끄러워할 만도 한데 후안무치다.

이런 무지와 무능한 태도가 불행하게도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분위기는 구한말 도도한 개혁개방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쇄국의 빗장을 쳤던 때와 비슷한 것 아닌가 걱정된다. 조선을 망하게 했던 흥선대원군의 그림자가 21세기인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매출의 95%를 해외에서 올리고, 현대·기아차도 85%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등 주요 대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애플 구글 IBM, 중국의 화웨이 텐센트 바이두 알리바바 등은 자국 정부의 온갖 보이지 않는 보호를 받으며 팽창하고 있다.

21세기판 대원군들은 적어도 이들과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 뒷다리는 잡지 말아야 한다.

경영권 보호의 틀을 무너뜨리는 지배구조 개편 강요나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 부담은 기업할 마음을 사라지게 한다. 더욱 큰일은 무소불위인 노조의 폭력 행사마저 방치하는 상황이 탈한국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을 타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공유경제, 자율차, 드론, 바이오헬스, 원격의료 등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기술과 서비스 확산도 말만 무성하다.

이렇게 가다간 우리 경제 상황이 구한말처럼 무기력해질 수 있다.

프랑스 유학 경험이 있던 청나라 외교관 마젠중(馬建忠)은 당시의 조선을 이렇게 묘사했다.

"조선의 땅은 상업이 발전하지 않아 국민이 빈곤하고 활기가 없다. 조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쇄국정책을 폐지하고 학교와 철도를 건설해야 한다. 세금도 감면해주고 상공업을 진흥시켜야 한다."(`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정병석 지음)

기업인은 적폐가 아니다.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을 배불리 먹게 하고, 경제를 윤택하게 만드는 이가 기업인들이다. 존경받아야 할 진정한 애국자다. 지금처럼 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고, 기업가정신을 짓누르는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다.

경제팀이 김&장(김동연·장하성)에서 홍&김(홍남기·김수현)으로 바뀌어 현장 목소리를 들으려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17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첫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경제 활력 제고 방안이 논의됐다. 하지만 여전히 글로벌 경쟁 상황과 기업인들이 진짜 괴로워하는 규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문정부는 글로벌 시각을 갖고 산업 현장을 다시 봐야 한다. 글로벌 경쟁의 큰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디테일마저 약한 지금의 기조라면 나라를 다시 망가뜨릴 수 있다. 문정부 키맨들은 10년 후, 100년 후 자신들이 어떤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지 깊이 고민하고 정책을 펴야 한다. 문정부가 쇄국정책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