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덕 / 논설실장

1452년 봄 조선에서는 단종이 즉위했다. 같은 봄 지구 반대편 피렌체의 조그만 식민 도시 빈치에서 레오나르도가 태어났다. 빈치의 레오나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르네상스인 다빈치다. 그는 조선에서 임금이 다섯 번 바뀌고 무오·갑자사화에 이어 기묘사화가 일어난 1519년까지 살았다.

새해는 그가 세상을 뜬 지 500주년이 된다. 피렌체 공화국과 밀라노 왕국을 오가다 프랑스에서 생을 마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오래된 신념이 허물어지는 시대를 살았다. 정치도 철학도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그는 다빈치 가문의 사생아였고, 대학에 가지 못했고, 동성애자로 고발당했으며, 오랫동안 이방인으로 살았다.

다빈치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그를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걸출한 화가로만 봐서는 안 된다. 다빈치는 인체와 동물 해부학, 기계학, 건축과 토목공학, 군사공학, 로봇공학, 수로학, 공기역학, 광학, 동물학, 식물학, 음악, 의상과 무대 디자인, 수학, 천문학 분야에서도 놀라운 통찰을 보여줬다.

영국 전기작가 찰스 니콜은 다빈치를 경험의 신봉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남들의 견해를 추종하고 모방하지 않았다. 스스로 관찰하고 증거를 모으며 지식을 쌓았다. 늘 새롭게 상상하고 혁신하고 창조했다. 성당 꼭대기에 구리 보주를 얹으려 지레와 도르래, 크랭크로 거대한 물체를 들고 끄는 방법을 시연하기도 했다. 물을 동력으로 곡식을 빻고 직물을 가공하는 기계도 설계했다.

그의 상상력은 500년 동안 꽃을 피웠다. 다빈치는 피라미드 모양의 낙하산을 설계했다. 그는 새의 비상과 관련된 역학을 탐구해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억누를 수 없는 욕망을 채우고자 했다. 그는 비행기계 도안과 함께 이런 말을 남겼다.

`육중한 독수리가 공기를 가로지르며 어떻게 날개를 퍼덕이는지 보라. 인간도 큰 날개를 장착하고 바람의 저항을 극복하며 몸을 띄우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새는 수학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다. 이 기계의 모든 동작을 재생산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만든 기계에 부족한 것은 바로 새의 영혼뿐이다.`

그는 대포로 적진을 뚫고 가는 `난공불락의 장갑차`를 제안하고 터널 굴착기와 조립식 다리를 구상했다. 잠수함과 같은 미래의 군사 기술을 상상하고 헬리콥터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장치도 생각했다. 직조기, 제분기, 풍차, 자동 실꼬기가 가능한 물레, 움직이는 기사와 사자 로봇도 설계했다. 그가 상상했던 것들은 오늘날의 탱크와 비행기와 로봇이 됐다.

그는 금기였던 인체 해부에 열정을 쏟았다. 냉동되지 않은 시신을 해부하는 일은 힘들고 역겨웠다. 피부를 절개할 때 지방이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교회의 눈총도 그의 탐구정신을 막지 못했다. 그는 30차례 해부로 가장 작은 정맥부터 뼈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신체를 정확히 표현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후세에 그토록 많은 영감을 준 이 르네상스인을 기념하는 행사 준비에 바쁘다. 지구촌은 사후 500년을 맞은 다빈치의 삶에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토지나 기계나 금융자본보다 인간의 창조적인 두뇌가 가장 귀한 자본이 되는 시대에 그는 새롭게 조명될 것이다.

지금은 다빈치처럼 상상하는 인재가 필요한 시대다.

우리에게는 그런 인재가 있는가. 우리의 젊은이들은 과연 다빈치처럼 혁신적으로 사고하고 투철한 실험정신을 가진 인재로 크고 있는가. 박제된 지식을 강제로 주입하는 입시제도와 후진적인 학벌주의에 숨 막혀 하고 있는 그들에게 다빈치처럼 틀을 깨는 상상력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게 가당키는 한 일인가.

기성세대를 생각하면 더 암울하다. 다빈치가 비행기를 설계하고 인체를 해부하며 살았던 67년 동안 조선에서는 세 차례 사화가 있었다. 조선의 엘리트는 경험적인 지식과 과학적 사고보다 공리공론과 당파싸움에 더 몰두했다. 500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디지털 혁명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갈 다빈치 같은 인재를 얼마나 절실히 찾고 있는가. 그런 인재는 숨 막히는 규제를 피해, 그리고 혁신이 제대로 보상받는 시장을 찾아 하나둘 떠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부르짖는 4차 산업혁명 선도와 제조업 르네상스는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