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1.17 목 18:16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본국지논단
우황청심원
세계일보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1.1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강호원 / 논설위원

   
 

담헌 홍대용이 청 연경에 간 것은 1765년이다. 영조 41년 때다. 그곳에서 만난 한족 학자인 엄성과 반정균. 헤어질 때에는 서로 눈물을 뿌렸다. 엄성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학식에서도, 도야에서도 홍대용에 뒤지지 않았다. 홍대용이 건넨 선물 중 하나는 우황청심원이었다.

노모에게 청심원을 드리고자 했던 두 한족 학자. 급히 약을 구하는 친구에게 한 알씩 덜어줘야 했던 두 사람은 청심원 한두 알을 더 구하기를 부탁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청심원은 아주 귀한 약입니다. 이곳 사람은 서 돈의 은을 주고도 오히려 가짜를 구해야 합니다.” 홍대용은 주머니에 남은 청심원을 모두 털어 주었다.

조선 사행단이 지나는 곳마다 듣는 말, “우황청심원을 구할 수 없을까요.” 신세 진 사람에게 건네면 눈물까지 글썽였다. 청의 관원에게도 쥐여 줬다. 그러면 풀리지 않던 일도 술술 풀렸다. 홍대용의 사행일기 ‘을병연행록’에 남은 내용이다. 그로부터 13년 뒤 청에 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비슷한 내용은 수없이 나온다.

조선의 우황청심원. 청을 뒤흔든 명약이다. 이 약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허준의 ‘동의보감’에 처방이 나온다. 동의보감을 편찬한 때는 광해군 2년, 1610년. 이때 처음 나온 걸까. 아니다. 이전에도 있었다. 없었다면 동의보감에 실릴 리 만무하다. 대량생산된 것은 1925년 조선무약이 창립되면서부터다. 솔표 우황청심원. 광동제약이 1973년부터 만든 우황청심원과 함께 쌍벽을 이루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간 베이징의 동인당. 한때 중국에 간 사람이면 이 회사의 우황청심환을 사 왔다. 약재의 차이는 있지만 ‘원’과 ‘환’의 명칭 차이는 크지 않다. 가짜가 많았다. 중국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동인당은 1669년 만들어졌다. 1723년부터는 청 황실에 어약을 만들어 바쳤다. 어약에는 우환청심환도 포함된다.

김정은은 왜 동인당에 간 걸까. 한의약을 세계 명약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20∼30분 머물렀다고 한다. 브리핑 한 번 듣기도 힘든 시간이다. 실망스럽다. 동인당에 갔다면 그런 생각쯤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