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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관동군사령부 건물은 중국 공산당이 아직도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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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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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 칼럼니스트·대기자

일본 전통 천수각 양식의 관동군사령부 건물에 중국공산당 지방본부 들어가
실사구시 정신에 충실한 중국 역사 외교의 단면 명분 위주 한국 외교와 달라

   
▲ 박보균 대기자

역사는 무기다. 역사는 지도력의 수단이다. 과거의 힘으로 오늘을 관리한다. 역사는 외교의 무장력을 강화한다. 그 힘은 내치의 민심 동원력으로 이어진다. 과거는 언제나 새롭게 활용된다. 그것에 얽힌 외교 소재는 녹슬지 않는다. 그것은 역사 관리의 미묘한 본능이다.

한·일, 중·일 관계의 바탕은 일제의 침략이다. 그것은 울분와 개탄의 주제다. 그 사안이 두드러지면 외교 정책은 단순화 된다. 박근혜 정권 시절 위안부 문제에 집중했다. 문재인 정부는 ‘투 트랙’ 접근을 예고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는 나눠지기 힘들다. 지금은 강제징용에다 레이더 문제까지 겹쳤다. 한·일 관계는 험악하다.

중국은 유연하다. 그들은 외교에 정의감을 넣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실리로 전환한다. 2014년 시진핑은 ‘임진왜란’으로 한국에 접근했다. 시진핑은 ‘공동의 적개심’을 말했다(서울대 강연). 그 언어는 한국인의 역사적 감수성에 투사됐다. 한·중은 일본 아베 정권에 함께 맞섰다. 그 장면의 이미지는 역사동맹이다. 역사동맹은 동북아의 지정학을 흔들었다. 한·중·일 삼각협력은 헝클어졌다.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은 커졌다. 그 후 중국은 달라졌다. 한·중 역사동맹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를 재구성했다.

중국의 그런 탄력성은 동북 3성에 가면 실감한다. 그곳은 과거 만주국(1932~1945년)의 땅이다. 지린성 창춘은 만주국의 수도였다. 중국은 ‘위만주국’이라고 부른다. 위(僞)는 괴뢰다. 창춘에 ‘일본 침략 중국동북 사실(史實)전람’ 박물관이 있다.

침략 주역은 일제 관동군이다. 관동군은 만주국 건립과 만주사변(9·18)을 조작·연출했다. 전시실에 관동군의 잔혹한 침략 행적이 묘사된다. 사령부 건물 사진이 붙어있다. 설명문은 “위(僞·괴뢰)만주국의 태상황(太上皇) 관동군 사령관, 동북인민 진압 도살(屠殺)의 총지휘부.” 전시관은 증오와 경멸을 쏟아낸다. 그 감정은 관객을 설득하면서 취하게 한다.

   
▲ 중국공산당 길림성 위원회 (옛 관동군 사령부)

그런 감정은 길거리에선 바꿔진다. 창춘에는 만주국의 건물이 퍼져 있다. 중국은 옛 건물을 부수지 않는다. 압권은 관동군 사령부 건물이다. 양식은 일본의 성곽인 천수각(天守閣)이다. 1934년에 준공했다. 오사카성의 천수각과 유사하다. 오사카성은 임진왜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 심장부다. 그런 사연의 관동군사령부 건물이 살아 있다.

충격은 천수각 건물의 사용자다. 입구 한쪽에 ‘중국공산당 길림성 위원회(中國共産黨 吉林省 委員會)’라고 붙어 있다. 문패는 만주국 시절 ‘관동군 군법회의’라고 적혀 있었다. 일본 관동군에서 중국 공산당으로 바꿨다.

관동군 침략과 천수각 건물 주인-. 기묘한 부조화다. 박물관에 731세균부대의 인체실험 전시물이 있다. 그 야만적 부대의 지휘부다. 그 건물을 보면 일제의 흔적이 넘쳐난다. 그런 곳에 공산당 건물이 들어가 있다. 그것은 한국 사회의 접근 자세와 대조적이다. 한국에서 일제의 잔재는 철거 대상이다.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철거는 주요 사례다.

나는 박물관 안내원에게 물었다. “왜 부수지 않는가. 그것도 일본 전통 양식이고 관동군사령부 건물인데.” 그런 의문에 대한 답변은 명료하다. “건물은 죄가 없다. 정신적 잔재만 확실히 청산하면 된다.”

그것은 우리 기준으로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중국인 다수는 일제시대를 거칠게 비난한다. 하지만 다음의 행동은 진중하다. 중국인의 역사의식 특성이다. 김명호 교수(『중국인 이야기』)의 분석은 여기서도 유효하다. “중국인들은 겉과 속이 달라야 양식 있고 세련됐다고 생각한다. 겉과 속이 같은 동물에게는 예절이 나올 수 없다고 여긴다.”

중국의 역사박물관에 공통적인 문구가 있다. “前事不忘 後事之師 (전사불망 후사지사, 지난 일을 잊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자)”다. 그 말은 비분과 강개를 생산한다. 중국인은 그것을 교훈으로 삼으려 한다. 하지만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온고지신(溫故知新)으로 옮긴다. 그것은 실용의 세계로 진입한다. 불행한 역사에서도 배울 것은 배우겠다는 자세다. 그것은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이어진다. 그런 자세의 외교는 명분과 실리의 균형이다. 그런 감각은 쏠림을 방지한다.

중국 외교는 전환과 변화에 능숙하다. 2018년 10월 시진핑은 아베와 베이징에서 대좌했다. 두 사람은 공통의 언어를 내놓았다. “두 나라는 가까운 이웃이다. 서로 협력하고.” 그것은 실용외교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그런 외교는 쏠림을 거부한다. 명분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런 장면들은 명분 위주의 한국 외교와 다르다. 비분강개(悲憤慷慨)의 역사문화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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