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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땅이고, 경제는 꽃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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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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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 통일연구원 원장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2018년 하반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시간도 없다. 미국이 바라는 비핵화의 수준은 결국 제재완화의 수준에 달려 있다.

그동안 제재는 핵개발을 막고 북한을 협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압박 수단이었다.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는 당연히 제재의 용도가 달라져야 한다. 지금이 바로 제재완화라는 수단을 활용할 때다.

   
 

땅이 없으면 꽃이 필 수 없듯이, 평화가 없으면 경제도 없다. 아름다운 꽃을 바란다면 땀을 흘려 땅을 갈아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평화가 소중하다. 물론 만질 수 없는 평화는 날아가기 쉽고, 일상의 삶이 나아져야 평화도 지속 가능하다. 북한에도 평화경제론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북한과 미국의 협상에서도 어쩌면 평화와 경제의 관계가 핵심이다.

비핵화 협상의 실패를 전망하는 ‘회의론’은 알고 보면 이념이고 맹목이고 근본주의다. 이들은 북한의 동기와 이해를 언제나 고정불변으로 본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편견뿐이다. 김정은 체제의 전략을 분석할 때, 과거와의 공통점과 차별성을 구분해야 한다. 결정적 차이는 경제다. 2011년 12월 새로운 지도자의 첫번째 지시는 ‘생산자가 생산 활동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이후 ‘우리식 경제관리’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경제 조치들이 등장했다.

개혁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사실상의 개혁’으로 볼 수 있는 조치는 지난 7년 동안 꾸준하게 진화했다. 계획 자체가 분권화되었고, 기업과 농장의 자율성이 계획 내부로 들어왔다. 시장은 김정일 시대에 계획 바깥에 ‘자생적’으로 존재했지만, 김정은 시대에 계획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기업의 경영권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분권과 자율을 법률로 보장했다. 가격제정권을 아래로 내리고, 변동가격을 기준으로 삼았으며, 외화 유통을 합법화했다.

소비 영역의 변화는 어떤가? 국영상점도 가격을 결정하고, 개인도 국영 유통망에 투자할 수 있다. 공급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상품을 결정하자, 북한의 의복과 건물과 도시는 계획시대의 흑백에서 시장시대의 색깔로 전환했다. 상품의 포장지가 달라지고 상업광고가 등장했으며,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에 볼 수 있는 ‘붉은 자본가’가 등장했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2016~2020)의 핵심이 개혁과 개방이다.

김정은은 최근 왜 4번이나 중국을 방문했을까? 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을 배우려 한다. 개혁개방이 흘러온 역사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도 학습 대상이다. 북한 지도자의 중국 방문 경험은 곧바로 북한의 주요 정책으로 등장한다. 작년에 중국의 농업과학원을 방문한 이후 영농의 과학화를, 올해 동인당(퉁런탕)을 방문한 뒤에는 제약산업의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의 지도자는 미국에도 ‘경제발전의 꿈’을 얘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미국은 오해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미래의 꿈과 열악한 현실을 솔직하게 말했을 때, 어쩌면 ‘제재의 효과’로 오판하고, 북한의 약한 고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평화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살아야 경제지, 죽으면 뭔 소용이 있을까? 북한은 경제를 위해 평화가 필요하다. 제재 때문에 핵무기와 경제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점도 안다. 그러나 미국이 ‘경제의 문’을 닫으면, 협상의 동기는 사라진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경제의 문을 열지 않으면, 북한은 중국과 ‘새로운 (경제발전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2018년 하반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시간도 없다. 미국이 바라는 비핵화의 수준은 결국 제재완화의 수준에 달려 있다. 그동안 제재는 핵개발을 막고 북한을 협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압박 수단이었다.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는 당연히 제재의 용도가 달라져야 한다. 모든 수단의 효과는 다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제재완화라는 수단을 활용할 때다. 제재를 완화해서 북한 주민의 생활경제를 개선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다시 말해 북한 지도자의 꿈과 북한 주민의 새로운 미래를 일치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전환’이고, 비핵화의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북한은 경제개혁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천천히 걷는 호랑이를 이제 달리게 해야 한다. 호랑이가 달리면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다. 호랑이를 어떻게 달리게 할까?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 꽃을 피우고 싶은 북한은 땅이 필요하고, 그래서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 꽃을 피울 기회를 주지 않으면 땅을 갈아야 하는 이유도 사라진다. 북한에서 꽃이 피면, 한반도와 동북아와 미국에서도 꽃이 핀다. 그리고 ‘고용 없는 저성장의 터널’에서 절망하는 우리네 청춘들의 가슴에도 꽃이 피리라. 꽃피는 봄을 위하여 언 땅을 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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