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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독립선언과 이광수의 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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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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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영 / 도쿄 특파원

   
 

올해로 2·8 독립선언이 100주년을 맞는다. 당시 일본 정부가 발간한 ‘조선인 개황’ 등의 자료를 보면 100년 전 조선인 유학생들이 얼마나 일본 정부의 집요한 감시를 받아왔는지 알 수 있다. 유학생들은 도쿄로 오기까지 평균 10번 검문을 받았고, 도쿄에 도착하면 유학생 감독부에 신고를 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일본 정부는 유학생들을 ‘갑’호와 ‘을’호로 등급을 나눠 관리했다. 1920년 외무성이 관리한 감시 대상 인물 212명 가운데 학생이 151명이나 됐다. 요즘으로 따지면 조선 유학생들은 국가전도세력 쯤 되는 위험인물이었던 셈이다.

2·8 독립선언에 관한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온 이들의 단체 사진은 이듬해인 1920년 겨울, 졸업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으로 알려졌다. 그나마도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11명이 전부 있는 것도 아니어서, 2명은 당시 얼굴 사진 조차 확보되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벌어진 독립운동에 대한 연구는 그 특성 상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할 때 절대적으로 연구의 양이나 깊이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여기엔 그동안 한국 정부가 2·8 독립선언에 대해 무관심했던 탓이 크다.

올해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정부가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치면서 다행히 2·8 독립선언도 재조명 되는 분위기다. 재일본한국YMCA에서 열리는 100주년 기념행사엔 처음으로 보훈처장도 참석한다고 한다. YMCA와 국가보훈처,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다.

그러면서 YMCA가 고민에 빠진 사안이 하나 있다. 2·8 독립선언의 후손들이 일부 참석하는데 이 가운데 이광수의 딸도 참석 의사를 밝혀왔다고 한다. 이광수는 2·8 독립선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독립선언일 당시엔 미리 상하이로 피신하는 바람에 현장엔 없었지만 나중에 3·1 독립선언문의 모태가 된 2·8 독립선언문을 직접 작성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이광수는 1940년대 앞장서서 친일 행각을 벌여온 인물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엔 이광수에 할애된 분량이 가장 많다. 혹자는 가장 악독한 형태의 친일 지식인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때문에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에 그의 딸이 참석하는 것이 맞느냐라는 논란이 뒤따른다.

그의 삶의 전반부와 후반부 중 어느 것이 더 평가받아야 마땅한지는 각각의 판단이 다를 수 있다. 또 개인이 참석하는 데 대해선 막을 방법이 없다. 다만 불필요한 논란으로 인해 2·8 독립선언의 의미가 퇴색하는 일은 사전에 방지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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