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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성과 결혼한 조선족 이주 여성들의 삶의 여정
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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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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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미화 / 연변대학교수

현재 한국사회는 국제결혼의 시대를 맞이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국제적 환경 및 한국의 경제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1980년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에 따라 산업부문 특히 중소기업의 생산 관련 직의 인력부족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남과 동시에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에 따라, 그리고 1987년 이후의 노사분규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급상승했다.

이와 같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1980년대 중반 한국 내에서는 ‘3D’직종의 일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고 이는 아시아지역 개발도상국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특히 여성 이주 노동자의 유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한국 노동시장의 소비형 서비스 산업의 증가추세와 한국사회에서의 성차별문화, 가족중심주의 인식은 이 부문에서 선호하는 여성노동자의 인력난을 초래하였다.

거기에 덧붙여 한국 여성의 결혼기피 및 만혼, 배우자 선택의 차별화, 남성의 경제력 약화, 남성 성비의 불균형 등등 사회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한국 여성배우자와의 결혼이 힘든 한국남성들은 국제결혼으로 그 모순을 해결하려 하였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 하에 아시아 여러 국가 및 기타 발전도상국의 여성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국에 입국하게 되며, 정상적인 경로를 통한 한국으로의 노동이주가 불가능한 녀석들은 이주의 수단으로 국제결혼, ‘위장결혼’을 선택하여 한국으로 입국하게 된다.

조선족 여성들도 당시의 국제적 환경의 흐름 속에서 한국남성과의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하게 되었으며 현재 한국의 국제결혼 여성 가운데서 가장 많은 수치를 차지한다. 조선족 여성들이 국제결혼의 방식으로 한국으로 입국하게 된 것은 또한 국제결혼행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및 지원과 갈라놓을 수 없다.

한국 여성들과 결혼할 수 없는 한국남성들에게 조선족 여성과의 결혼은 하나의 대안으로 여겨졌으며 한국정부는 또 그들이 결혼과 관련된 행사에 적극 개입하거나 지원하는 것 외에 노동력 이주는 엄격하게 제한하면서 가장 손쉽고 유리한 입국통로로서 결혼을 통한 이주를 허용하고 지원하는 이주정책을 시행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족 여성들이 ‘결혼’이라는 이주방식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개혁개방이라는 시대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부에 대한 욕망, 자녀부양 등 개인적 선택, 경제적으로 무능력하여 한국 여성과의 결혼이 어려워진 남성들의 수요와 이를 보장해주는 이주정책 그리고 상업화된 결혼시장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남성과의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한 조선족 여성들의 삶의 여정은 어떠한가. 물론 한국남성과 결혼한 여성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통틀어 살펴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입국한 조선족 여성들도 학력, 직업 등에 따라 계층적으로 분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국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에서 살아갔던 조선족 여성들의 삶의 여정을 부분적으로나마 살펴보는 것은 이주 여성의 능동적인 삶을 드러내고 향후 발전 방향을 가늠함에 있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우선, 한국으로 이주하기 이전 조선족 여성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살펴본다면, 개혁개방 이전 조선족 여성들의 생활과 가치관의 변화를 세 단계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단계는 19세기 중엽 조선반도의 ‘조선인’들이 대량으로 중국에 이주하면서부터 1949년 새 중국 창립 이전까지이고 둘째 단계는, 새 중국 창립 이후부터 문화대혁명 이전까지이고 세 번째 단계는 1966년-1976년 사이의 문화대혁명 기간이다.

먼저, 동북 이주 초기에 봉건적인 ‘삼강오상(三綱五常)’, ‘삼종사덕(三從四德)’의 고정관념을 그대로 지니고 온 조선족 여성들은 의식주 일체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어른, 남편, 자식을 위하며 오직 가도만을 위하여 노력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을 유일한 미덕으로 간주하였으며 또한 그러한 의식이 몸에 배인 여성들이었다.

그 후, 1919년 신문화운동과 서방의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의 전파는 민족의식교육과 구국구민(救國救民)운동 등 반일계몽운동의 중요한 사상적 배경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시기 동안 봉건유교사상의 속박 하에 있던 조선족 여성들로 하여금 ‘남존여비’, ‘삼강오상’, ‘삼종사덕’ 등 봉건윤리 도덕규범을 타파하고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며 자신의 독립적인 인격을 갖추도록 추동하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대부분 조선족 여성들은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현모양처를 인생의 최종가치로 간주하며 순종적이고 폐쇄적인 삶을 살았다. 다음으로, 새 중국 창립 이후 조선족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여성들의 가치관 판단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중국은 전반 여성의 노동계급화를 통하여 생산수단을 사회화하였고 가정의 사회화, 집단화를 정책적으로 추진시켜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족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사회에 나가서 생산노동에 참가하였다. 이렇게 본격적인 사회진출을 통하여 조선족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지위의 향상은 얻어왔지만 동시에 사회와 가정에서 양립해야 하는 이중적 역할의 부담도 상당히 컸다. 도시나 농촌을 막론하고 여전히 남자 중심의 가정생활로서 조선족 여성들은 모든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부담하면서 사회생산 활동에도 참가해야 하였기에 사회와 가정의 이중적 부담으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매우 피로하고 힘겨웠다.

그 다음으로, ‘문화대혁명’의 10여 년간 중국의 조선족 여성들은 가정생활과 혼인생활도 의식적으로 정치와 연관시키면서 정치운동 참여에서 자기의 사회적 지위, 정치적 가치를 찾으려 하였다. 한마디로 개혁개방 이전 조선족사회에서 여성들은 우선은 가족의 생존이라는 중임을 짊어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여성들이였을 뿐만 아니라 부지런하고 열정적이며 삶에 있어서의 무한한 잠재력을 갖춘 여성들이었으며 또한 변화에 대한 강한 적응력과 생활력, 포용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개혁개방 이후 조선족 여성들은 상업에 종사하게 되였으며 도시, 해외로 이동하여 경제활동에 종사함으로써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킴과 동시에 점차 과거 가정의 현모양처, 사회에서의 종속적 지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모순체로부터 탈피되어 자존, 자주, 자강의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혼인 관에 있어서도 결혼을 평생 결합으로 간주하고 혼인에 만족하지 않으면서도 이혼하는 것을 명예롭지 못한 일로 여기면서 혼인을 파괴하지 않으려던 의식으로부터 국제결혼도 능히 허용하고 또 출국의 수단으로 국제결혼도 가히 이용하는 혼인의식을 형성하였다.

국제결혼에 나타나는 ‘가짜이혼’ 혹은 ‘위장결혼’ 현상은 그들의 정조관념이 윤리 도덕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는 실용주의에로 변화 되였음을 말해준다. 어찌되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일부 조선족 여성들이 그들이 가족 부양의 의무 때문에 글로벌 차원의 결혼시장으로 편입하기는 했으나 그러한 의무 못지않게 그들 자신의 계층상승이나 새로운 삶에 대한 욕망도 그들이 국제결혼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체제의 급격한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감히 과거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선택을 하는 적극적 행위자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으로 입국한 후 그들의 삶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결혼이란 서로 다른 가정에서 성장한 성인 남녀가 만족스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적응과정이기 때문이다. 하기에 어려운 점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란 매우 어렵다. 더욱이 서로 다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두 남녀가 맺는 국제결혼은 결혼하는 순간부터 많은 모순들을 내재하고 있다.

조선족 여성들의 국제결혼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같은 민족’이라는 점에서 더욱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예를 들면, 한중관련 정치적인 뉴스가 나올 경우 남편은 중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면서 조선족 아내를 ‘무시’하고 ‘비하’한다. ‘같은 민족’이고 ‘같은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조선족 여성들은 이런 남편의 태도에 ‘정말 실망’하게 되며, 이런 부부간의 생활을 체험하면서 조선족 여성들은 “내가 왜 한국에 시집왔는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고민을 가진다고 한다.

국가의 이해관계에 있어서 의견이 다른 경우 한국 남성은 조선족 여성을 아내라고 생각하지 않고 ‘중국인’이라고 인식하면서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비난한다. 국가관에 있어서 한국남성들은 조선족 여성들이 무조건 남성의 국가관을 순응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태도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한국남성들은 조선족 여성들이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더 순종적이고 자신의 말이면 무조건 들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그들은 결혼생활을 통해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에서의 남녀관계는 한국보다 덜 ‘전통적’이며 상대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선족 여성들은 수십 년 동안 중국이라는 문화권 속에서 사회발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조선반도의 여성과는 다른, 중국의 한족과도 상이한 조선족 특유의 문화를 창조하였고 이중성격의 여성상으로 발전하였다. 그들은 외유내강의 기질과 강한 생활력, 적응력, 포용력의 소유자로서 사업에서는 자신이 자주적이고 남성들과 겨룰 수 있는 강자로 되려고 하며 생활에서도 자신의 생활적 여유와 향수도 누릴 수 있는 삶을 바란다. 하지만 한국 가족구성원들은 조선족 여성들의 이러한 고유한 문화특성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적응만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적응기에 있어서 남편으로부터 '소외', 시부모에 대한 '복종', 동서들로부터 받은 '무시'경험, 한국인으로부터 받은 차별적 경험을 하고 있으며, 그들과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삶의 방식을 재형성함과 동시에 민족정체성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즉 조선족 여성들은 다양한 가족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버리고 한국 사회에 완전히 적응하기보다는 적절하게 회피하거나 적당히 반항하는 등 자신만의 방어기제와 삶의 전략을 형성하게 된다.

예를 들면, 중국어 구사능력으로 자신만의 우월감을 형성하며 ‘중국인’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하고 또 완전히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조선족 단체에 귀속되어 ‘중국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한국에서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도 있다.

요컨대, 한국남성과 결혼한 국제결혼 이주 여성들은 새로운 미래와 비전을 위해 국제결혼 이주를 선택한 능동적인 행위주체들로서 그들은 계층상승 혹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과 강한 생활력의 소유자들로서 남편과 가족 및 한국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맞서, 완전히 복종하지 않으면서 또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 유연성과 포용력으로 스스로의 삶의 전략을 구사하면서 한국사회에서 가정을 영위해 나갔으며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에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전개하면서 조선족 여성만의 독특한 삶의 단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조선족 국제결혼 이주 여성들의 삶의 여정은 세계 각국 이주 여성들의 초국적인 경험과 삶을 조명하고 향후 이주 여성들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좋은 일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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