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현 / 극작가·시인]

뉴욕 필하모닉이 한인 작곡가 진은숙씨에게 위촉한 신곡을 이번 시즌에 초연한다는 소식이다. 뉴욕필이 여성작곡가들의 현대음악에 중점을 둔 '프로젝트 19'를 위해 전세계 여성작곡가 19인을 위촉 작곡가로 선정했는데, 진씨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다. '프로젝트 19'는 미국 여성들의 참정권을 가능케 한 미국 수정헌법 19조 비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콩쿠르를 휩쓰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이제는 콩쿠르에서 입상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당연히 뛰어난 연주자도 많아서, 별로 신기하지도 않다. 조성진처럼 세계무대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독주자도 많고,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한인 연주자가 많은 것은 물론 악장이나 부악장도 적지 않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는 거의 없다. 지휘자도 드물지만, 작곡가는 정말 귀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작곡가는 윤이상 선생이나 진은숙씨 정도인 것 같다. 왜 그럴까? 가장 흔한 대답은 "한국 사람들은 이미 있는 것을 익혀서 하는 것은 매우 잘하는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잘 못한다"는 것이다.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창의(creativity)란 말 자체가 '세상에 없는 새 지식'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창의력의 문제는 음악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숙제일 것이다. 한때 요란했던 창조 경제니 창조 사회 같은 말들도 그런 위기감에서 나온 처방이다. 노벨상을 왜 못 받느냐에 대해서도 결국은 창의력의 부족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말 그런가? 왜 그럴까? 제일 먼저 나오는 대답은 교육이 잘못되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이 시험성적 위주의 암기식 주입식 교육이어서 창조력을 길러내지 못했다는 것, 어렸을 때부터 OX 문제나 사지선다형 문제를 풀며, 성적에만 아등바등 매달리며 자랐으니 창조력을 기를 사이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뻗어나갈 용기를 기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톡톡 튀는 창의력을 발휘하면 망치에 두들겨 맞는 못과 같은 신세가 된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이다. 한국의 가정이나 사회가 창의적인 발상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가득하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되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물"이라고 대답해야지 "봄"이라고 했다가는 바보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창의력은 집중적으로 공부하거나 가르친다고 단시일에 향상되는 능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창의적 발상을 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토로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론적으로는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인데, 실제로는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답답한 현실이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의 교육, 특히 영재교육도 많이 달라졌으니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작곡가나 지휘자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아니면 상대적으로 열린 교육환경에서 공부한 재미 한인 2세들에게 기대를 걸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