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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전 서희 외교에서 배운다
장철균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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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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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균 / 주 스위스 대사


   
올해로 서희가 죽은 지 1010년이 지났다. 동아시아 최강자로 부상한 거란의 대군이 993년 고려를 침공했을 때 서희는 적장 소손녕과의 외교담판을 통해 오늘날의 평안북도 강동 280리를 차지해 고려의 영토를 압록강 경계로 확대시킨 큰 업적을 남겼다. 월등히 우세한 군사력으로 다른 나라를 침공했다가 전략적 요충지를 상대에 양보한 후 철군한 사건은 동서고금을 통해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사례일 것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첫째, 고려의 대응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서희와 최고 정책결정자인 성종의 역할이다.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열린 조정회의는 항복과 할지(북한산 이북의 옛 고구려 땅 양도)로 의견이 나뉘었고, 할지로 기운 상태에서 서희는 ‘우선 항전해 보고 후에 협상해도 늦지 않다’(선 항전 후 협상)는 대안을 제시했으며, 성종은 서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고려사’는 전하고 있다. 서희의 의견과 이를 수용한 성종의 결단이 없었다면 거란과의 외교담판도 없었을 것이고, 훗날의 우리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둘째, 서희의 출중한 상황 판단과 협상능력이다. 서희는 거란이 중국 대륙의 송(宋)과 고려 관계를 단절시켜 중립화 시킨 후 송을 제압해 동아시아의 패자가 되겠다는 것이지, 고려를 점령해 속국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님을 간파했다. 그런 뒤 소손녕의 두 가지 요구 중 ① 송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거란과 사대관계를 갖는 것은 받아들이고(명분) ② 옛 고구려 땅 강동 6주는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가 차지(실리)해야 양측의 사대우호 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는 논리로 소손녕을 설득한 것이다.

지·덕·용을 겸비한 서희는 ‘지피지기’의 관찰로 ‘명분과 실리의 거래’를 성사시킨 것이다. 성종과 서희 사후 고려가 정경분리 정책으로 다시 송과 교류했을 때 거란의 막강한 기마 군단은 수차에 걸쳐 고려에 침공했으나 거란이 양보한 강동6주의 험준 지세를 활용한 고려군에 의해 모두 참패 당했다. 이러한 역사의 교훈은 명분의 허망함과 실리의 유용함을 실감케 해주고 있다.

셋째, 고려의 국가 비전과 탄탄한 국방력이다. 왕건은 삼국 통일 후 고려를 국호로 정하고 고구려를 계승해 북방정책을 꾸준히 추진했으며, 고려는 이러한 국가 비전에 따라 상당한 군사력을 유지해 왔다. 서희는 고려군에 대한 신뢰와 고려의 지형지세를 이용한 항전으로 거란군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선 항전 후 협상론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고려의 대응과는 반대 방향으로 전개된 사례가 임진왜란이다. 우유부단했던 조선의 선조는 이율곡의 십만양병설을 묵살했고, 조정은 동서로 갈라져 정쟁을 일삼은 결과 왜란에 대한 군사적 대비가 소홀했으며, 끝내 이순신의 공로마저 격하시켰다.

이어 계속된 조선의 정쟁은 광해군을 몰아내기 위해 기우는 명(明)과 떠오르는 청(淸) 사이에 중립을 지킨 그의 외교노선을 비판하고 명에 대한 임진왜란 참전의 은혜를 인조반정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반정은 성공했으나 얼마 후 병자호란을 겪어야 했다.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라고 했다. 외교는 초당적이어야 국익을 지킬 수 있음은 자명한 이치다. 냉전도 열전도 아닌 21세기 외교전에서 서희 외교의 성공사례는 1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타산지석으로 삼는 데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된다.


   
<편집자의 주>

서희는?
고려 전기의 외교가(942~998).
자는 염윤(廉允).
성종 12년(993)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에, 적장 소손녕과 담판하고 유리한 강화를 맺었다.
이듬해에는 여진을 몰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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