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호 / 부산 영산대학교 교수


올해 들어 이명박 대통령은 외국 정상으로서 아소 다로(麻生太郞) 수상을 처음 맞았다. 지난 1월 11일 아소 수상은 작년 9월 취임한 이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국제회의 참석을 제외하고 개별국가 방문으로서는 처음 한국을 선택했다.

작년 4월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에 일본을 방문했던 것에 이어 이번에 일본 수상이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양국 정상은 셔틀 외교가 복원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다자간 국제회의 등을 통해 두 정상은 과거 유례가 없을 정도로 한 달에 한번 꼴로 자주 만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 벽두부터 이렇게 또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이념적으로는 국제사회에 대해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를 천명하고 현실적으로는 급변하는 국제경제 변화에 대해 양국이 공동 대처하고자 하는 의지를 서로 확인하고자 하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근래에 들어 한일 양국의 국민 정서는 전반적으로 상대방 국민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분위기가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움직임을 둘러싸고 2008년에 이어 2009년에 들어서도 네티즌 사이에 상호 불신감이 첨예하게 표출되고 있다.

여기에다가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던 양국의 외교당국을 당황하게 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조선일보가 1월 3일자 기사에서 독도를 행정권 관할지역에서 배제한 1951년의 일본정부 법령 두 건을 공개하기 시작하여 연일 1950년대 일본 정부의 독도 인식에 관한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 그것이다. 나아가 독도수호전국연대 등의 사회단체는 아소 수상의 방한을 반대하고 항의하는 집회를 갖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상호간의 감정을 건드리기 쉬운 역사인식 문제와 영유권 문제를 직접적인 의제로 삼지 않았다. 지난 11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아소 수상이 참배한 곳은 양국 간의 역사 문제와는 거리가 있는 현충원이었다.

지난 1월 12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과거사 인식 문제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이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으며, 아소 수상은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하여, 모두 직접적인 언급을 회피하고 원론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일 정상회담에서 독도나 과거사 등 민감한 문제가 다뤄지지 않은 것과 관련하여 “굳이 현안도 아닌데 그때마다 언급할 이유는 없다”고 해명했다. 양국 정상의 빈번한 만남이 결과적으로 국민 상호간의 이해와 교류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하는 정상외교의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아울러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의 경제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이라는 현실적 의미가 매우 크다. 일본의 재계 총수 18명이 아소 수상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가운데, 어제 한국의 주요 4개 경제단체가 주최하는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여 한국과의 자유무역을 향한 경제협력협정 체결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회담 전날인 11일, 한국정부가 주최하는 환영 만찬에서도 시종 경제교류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으며, 이 자리에서 양국 정상은 경제계 인사들에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긴밀한 협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2일 오전에 1시간 정도 가진 회담 자리에서도 양국 정상은 주로 경제적인 문제에 관하여 논의했다. 자유무역 협정을 위한 실무 협의를 계속해 가기로 하고, 국제금융체제개혁, 거시경제정책, 보호무역대처 등에서 공조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당면한 과제로 국제금융체제 개편을 위한 실무기관인 금융안정포럼(FSF)이 올해 3월말에 신흥국을 영입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이 기관에 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하는데 대해 일본이 협력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짧은 시간의 회담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상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상호 협력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6자회담을 통하여 북한에 대해 핵개발을 포기하게 하고, 미국에 새로 들어서는 오바마 행정부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자고 하는 대외정책의 기조를 서로 확인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공동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로 하는 등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문제에도 공동보조를 맞춰 나가기로 합의했다. 또한 ‘아리랑 3호’ 위성 발사체 용역업체로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선정된 것을 계기로 양국간 우주기술, 원자력 협력도 강화해 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양국 젊은 세대들의 인적교류 확대를 위해 워킹 홀리데이, 유학생 파견 사업, 단기 연수 프로그램 등을 적극 지원하기로 하고, 민간 차원에서 한일관계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연구하는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도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