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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와 김수영, 식민지 지식인의 초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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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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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철 / 논설위원

시인 김수영은 1966년 한 잡지에 기고한 ‘시작 노트’를 일본어로 써서 보냈다. 이 글엔 ‘해방 후 20년 만에 비로소 번역의 수고를 던 문장을 쓸 수 있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어로 글을 써서 우리말로 번역해왔다는 충격적 고백이었다. 그런데 잡지 쪽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해 실었다.(<우리를 지키는 더러운 것들>, 김철) 해프닝이 돼버렸지만 김수영에게는 무언가 삶의 뿌리에 대한 고백, 식민지 청년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털어내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으리라.

김수영이 1921년생이고 윤동주는 1917년생이니 동시대인이다. 영화 <동주>에는 윤동주가 한글 육필 원고의 출간을 두고 노심초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주 북간도에서 나고 자란 윤동주는 ‘한글 시작’이 자연스러웠을까? 그렇다 해도 창씨개명과 징병이 횡행하던 그 시절 윤동주가 ‘한글 혼’을 간직한 건 대단한 일이다.

김수영의 ‘고백’은 식민지 시대가 다층적인 역사적·문화적 공간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1920~30년대 태어난 식민지 지식인은 일본어로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해방 후 겉으론 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삶을 살았다. 1935년생인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씨는 한 인터뷰에서 해방이 되자 “황국신민으로 여긴 나는 속으로 ‘나라가 망했는데 왜 저리 좋아하나’ 의아해했다”고 했다. 그 시절의 단면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를 근대화로 보느냐, 수탈로 보느냐는 것도 단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박태균은 <이슈 한국사>에서 “‘식민지 시기에는 개발과 수탈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기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근대’와 ‘개발’만을 강조하는 식민지 근대화론도 문제지만, 수탈의 측면만 보는 수탈론도 식민지 시대의 변화를 잡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식민지 시절 일제의 폭압과 학정으로 우리 민족이 극도로 고통받았다는 건 거족적으로 일어난 3·1운동이 웅변한다.
올해는 3·1운동, 임시정부 100년이고, 해방된 지 74년이 된다. 역사는 오늘의 눈으로 바라보는 과거라지만, 우리는 그 100년 세월만큼 더 폭넓고 객관적인 눈으로 과거를 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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