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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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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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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근 /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차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무엇이 부당한 차별인가(개념)에 대한 질문이지만, 동시에 왜 차별이 문제가 되는가(효과)에 대한 물음을 담고 있다. 또한 이 물음에는 누가 차별을 받는가(대상과 범위)라는 문제 또한 내포하게 된다. 이 질문을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먼저, 무엇이 차별인가. 차별은 대상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고 범주화하는 것이다. 화장실의 칸을 성별로 나누는 것은 타당하지만, 소득별 혹은 인종별로 나누도록 한다면 어떨까. 대개는 심한 분노와 모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분류와 범주화는 소득 내지 인종이라는 기준에 의해 누군가가 부당하게 대우를 받았던 과거의 경험과 낮은 지위에 처해있는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즉, 차별은 과거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거나 현재 낮은 지위에 있는(history of mistreatment or current social disadvantage) 집단을 특징짓는 특성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범주화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차별이 문제되는가. 첫째, 차별은 분류와 범주화를 통해 특정한 대상에게는 비하와 모멸감을 갖게 하고 사회 일반으로는 혐오 내지 증오의 감정을 생산한다. 또한 특정 대상에 표출된 혐오와 증오의 감정은 억압을 통해 구조화되고 폭력을 통해 발현되기도 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등장한 인종이라는 범주를 생각해보자. 인종이라는 기준에 의해 분류하고 범주화하는 작업은 누군가로 하여금 비하와 모멸감을 갖게 하고, 사회적으로 혐오와 증오의 발언을 내뱉게 하기 쉽다. 공공연하게 표출된 혐오와 증오에 대한 발화는 차별받는 대상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하고 나아가 살인, 폭행, 방화, 테러와 같은 범죄를 발생시키게 된다.

둘째, 억압과 폭력을 경험한 대상은 그 경험을 내재화해서 수동적인 주체로 전락하거나, 보다 하위의 대상에게 억압과 폭력을 가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요컨대, ‘차별-비하와 혐오-억압과 폭력’이 악순환하면서 끊임없이 가해와 피해가 반복되는 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셋째, 이와 같은 차별의 악순환구조는 특정한 분류기준과 범주화가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정착하는데 기여를 하면서, 사회의 다양성을 축소하고 획일적인 기준으로 폭력적인 서열화와 부당한 위계질서를 공고화하게 된다. 이렇게 범주화된 차별은 영구적인 불평등(durable inequality)으로 자리잡는다.

마지막으로 누가 차별을 받는가. 위에서 확인한 것처럼, 과거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거나 현재 낮은 지위에 처해있는 집단이 그 대상이다. 그리고 차별을 통해 혐오의 대상이 되고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이들이 그러하다. 우리 사회 난민과 이주민을 살펴보자.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고 국적, 피부색,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아니 ‘낯설다’는 이유로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된다(난민이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보호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외국인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난민에 대한 폭언과 조롱이 만연하고, 이들이 범죄자 내지 테러리스트라는 근거없는 가짜뉴스가 끝없이 전파된다(2018년 제주에 온 예멘인들을 둘러싼 각종 우려와 억측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지금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주민 특히 미등록 외국인에 대한 임금체불과 (성)폭행과 같은 범죄가 빈번하지만 이에 대한 관심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심지어 누군가 난민과 이주민의 현실을 지적하고 인권을 말하는 순간, 좋게는 철부지 이상주의자 내지는 감상주의자, 대개는 매국노라는 비난을 듣게 된다.

실상 어떤 대상에 대한 차별의 문제를 말하는 것은 그 대상을 차별받고 억압받는 객체의 지위에 머물게 하지 않고, 적극적인 주체의 지위로 복원하려는 의도이다. 다양한 주체들이 부당한 차별에 저항하고 구조적인 억압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모두가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것이야말로 해방의 근대적 기획이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완의 프로젝트가 아닐까.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계몽되어야 한다.

덧붙여 ‘차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개념과 효과 그리고 대상과 범위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지만, 또 하나 놓쳐서는 안되는 질문이 전제되어 있다. 누가 문제를 제기하는가(주체)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많은 경우, 질문(물음)은 주체의 권력을 확인하고 권력을 재배치하는 정치적 수단이 된다. 차별의 당사자에게 이 질문은 자기성찰과 해방의 계기가 되지만, 우리 모두에게 이 질문은 중첩적 합의를 통해 민주적 법치국가를 제도화하고 실현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적절한 질문을 하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실천적 해답을 찾는 중단없는 과정이야말로 오늘날 실천이성의 핵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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