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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만난 물고기를 만드는 교육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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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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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정 / 교육과혁신연구소장

   
 

히카루는 일본 고치현 고쿠사이중학교 1학년이다. 고치현은 일본 47개 시도 지역 중 가장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고 학력이 낮은 지역 중 하나인데, 작년부터 공립 중·고등학교에 전 과목 토론·논술 기반인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 과정을 자국어로 도입했다. 무상 공립학교이지만 새로운 교육이라 우선 원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도록 선지원을 받았더니 올해는 경쟁률이 3대1이었다. 지원자 중에는 집이 꽤 먼 거리에 있는 학생도 있었다.

히카루도 그중 하나다. 히카루 집에서 학교까지는 자전거와 전철로 왕복 2시간 반이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중학교 1학년에게는 작지 않은 부담이다. 중학교 교사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에게 왜 어린 아들이 이렇게 먼 곳에 있는 학교를 다니도록 결정했는지 물어봤다.

"부모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결정한 거예요."

IB 체험수업에 참여한 후 아이가 이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히카루 외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이 학교에 지원한 계기가 체험수업이었다. 입학 전 체험수업에 참여하고 나서 아이들이 직접 결심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현직 공교육 교사인 히카루 부모는 기존 공교육에서는 지식을 `가르치고 전달`하는데, IB 학교는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검색하면서 필요한 지식을 `스스로 획득하고 자신의 생각을 계발`하는 것이 큰 차이라고 한다.

"부모이면서 동시에 공교육 교사여서 어느 교육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건 아들이 어른이 됐을 때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어쩌면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대가 될지도 모르는데 아이들이 우리 때와 똑같은 공부를 하고 있으면 안 되지 않을까요?"

일본 교육혁명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고치현을 방문했을 때 이야기다. 히카루뿐이 아니다. 제작진은 촬영을 위한 사전 준비나 연출이 전혀 없이 있는 그대로 수업을 종일 참관했다. 어느 수업에도 한국 수업시간에서 흔히 보이는 엎드려 자는 아이가 없었다. 질문마다 학생 대다수가 손을 들었다. 학생들은 끊임없이 의견을 표현했다. 모든 아이의 눈빛이 살아 있었다.

영어 수업시간에는 아예 빈자리에 앉아 나도 학생처럼 같이 수업을 받아 봤다. 중학교 1학년 수업이었는데, 우리 중학교 교재보다 압도적으로 쉬운 교과서여서 놀랐다. 내 옆자리에 앉은 겐지는 영어 문법과 철자에 적지 않게 실수를 했다. 초등학교 때는 영어 시간이 지루했단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 1년을 배우자, 우리나라 중학교 영어보다 훨씬 쉬운 교과서를 쓰고 문법도 발음도 실수투성이인데도, 아이들은 거리낌 없이 영어로 말을 했다. 문법상 어법상 실수를 걱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교과서 지문 뒤에 이어질 새로운 스토리를 각자 영어로 창작하고 있었다. 틀릴까 봐 선뜻 영어로 말하기를 꺼리는 우리 학생들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우리 모두 어려서 모국어를 배울 때 문법도 발음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거리낌 없이 말하면서 언어를 배우지 않았던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영어뿐이 아니었다.

모든 수업에서 다 볼 수 있었다.

이쿠코 쓰보야 일본 국가교육재생실행위원회 위원은 현재 일본 상위권 58개 대학이 IB를 대입에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면서 비싼 국제학교나 사립학교에서만 운영되던 우수한 교육을 공립학교에 모국어로 무상 도입해야만 경제 격차가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며칠간 수업과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직접 만나면서 제작진의 반신반의하던 마음은 어느새 감동과 확신으로 바뀌었다. 학교 과제가 바빠서 학원 갈 시간이 없다는 아이들. 실수 걱정 없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좋아서 왔다는 아이들. 적지 않은 공부량인데도, 두 시간 넘는 통학 거리인데도, 고치현의 공립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눈빛은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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