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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한인의 날 회고
한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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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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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 / 코리아포스트 칼럼니스트

   
 

뉴질랜드 한인 사회의 원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우리보다 이민 역사가 빨리 시작된 이웃 호주의 경우 정부가 매해 발행하는 1958년도 연감에 한국인 1명이 1957년도에 시민권을 받았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한국인이 누구인지 어떻게 호주에 까지 와서 시민권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배경을 알 수 없다. 호주에서는 2008년 1월 ‘호주한인 50년사’를 발간하였는데 이는 최초의 시민권자가 발견된 1957년부터를 기산하여 나온 50년사이다.

뉴질랜드에 처음 상륙한 한국인이 누구일까? 이를 밝히는 일은 자못 흥미로울 수 있는 일일 것이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는 형편이다. 1945년 3월 당시 4명의 한국인이 거주하였다는 자료가 밝혀지기는 하였으나 그 4명이 누구이며 어떻게 입국하였는지는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2007년에 ‘뉴질랜드한인사’를 발간하면서 뉴질랜드 한인사회의 원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는데 뉴질랜드에 한국대사관이 개설된 1971년 7월을 원년으로 제정하자는 동의가 형성된바 있다. 왜냐하면 그 때가지는 뉴질랜드에 장·단기로 거주 또는 체류하고 있던 국제결혼에 의한 입국자, 콜롬보 플랜에 의한 유학생, 원양어선 선원, 무역관 직원 및 가족 등 한국인들이 있었으나 한인 사회를 구성하려는 결집력이 없었다. 대사관 개설과 함께 구심점이 생겨 조직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따라서 금년은 뉴질랜드에 한인 사회가 형성된 지 48년이 되는 셈이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사회적 존재이다. 그 더불어 사는 사회는 같은 핏줄,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림들끼리 우선 형성되기 마련이다. 한인 사회가 형성되면서 자연 한인끼리의 모임이 이루어졌고 가족 단위, 친지 중심으로 야유회나 바비큐 파티(Barbecue Party) 등을 통해 낯선 이국땅에서의 외로움을 달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었다.

1974년 10월에는 당시 강춘희 대사관저에서 재뉴질랜드 한인회의 창립 모임이 있었고 초대한인회장으로 박흥섭씨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파머스톤 노스에서 한인총회가 열렸는데 이 때는 뉴질랜드 전국에서 자동차로, 기차로, 또는 비행기로 한인들이 모여들었다. 72명으로 추정되는 전 교민 중 40여 명이 가족 동반으로 참석하여 총회를 개최하고 총회 후 같이 식사하고 축구, 탁구, 달리기 등을 하며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투자이민 제도 시행으로 오클랜드로의 한인 유입 인구가 급증하게 되자 자연히 1989년부터 오클랜드 한인 사회가 태동하기 시작했고 1991년 4월에는 오클랜드에 본부를 둔 한인회가 출범하자 이어서 크라이스트처치와 웰링턴에서도 각각의 한인회가 출범하여 지역 한인회 시대가 시작되었다.

한인회의 년 중 최대의 행사는 ‘한인의 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한인(한국)의 날 행사를 오클랜드 중심으로 회상해보고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서도 논의해보고자 한다. 한인(한국)의 날 행사는 우리 한인들이 모여 고국에서의 정취를 맛보고 정담을 나누는 만남의 장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전통 문화와 한류(Korean Wave)를 현지인들에게 전파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

1989년 8월과 1993년 10월에는 오클랜드 아오테아 극장에서 한국의 밤(Korean Night) 행사가 열렸는데 교민의 대다수와 다수의 키위들이 함께 흥을 돋우었다. 고전무용, 민요, 흘러간 가요, 가야금 합주, 태권도 시범 등을 관람하고 마지막엔 민요 아리랑과 서울찬가를 참석자 전원이 합창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이후 오클랜드에서는 매년 11월경 ‘한인의 날’ 행사가 아오테아 광장을 중심으로 열렸고 퀸스트리트 시가행진도 실시되었다. 아오테아 극장 로비에서는 각종 문화 전시, 시연회가 열렸고 밤에는 아오테아 극장에서 야간행사로 교민 노래자랑, 장기자랑, 전통 의상 쇼, 한국에서의 초청단 공연 등이 이루어졌다. 그 때는 7월에 한인회장 선거가 있었고 11월에 한인의 날 행사가 이어져 준비에 무리가 있었을 뿐더러 계절상 날씨를 걱정해야하는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1998년 행사는 날씨 관계로 행사 당일 취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2000년대 들어 한인의 날을 정월 대보름에 맞춰 2월에, 장소도 노스쇼어 이벤트 센터로 옮겨 실시하기 시작했으며 2007년도에 아오테아 광장에서 한번 열린 외에는 그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행사일이 순연되어 3월말이나 4월로 미루어져 실시하다보니 날씨가 다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작년 한인의 날 같은 경우는 야외행사가 취소되었고 야외 먹 거리 장터나 전시 부스가 실내로 축소되어 열리기도 하였다.

한인(한국)의 날은 우리 한인들끼리만 만나서 즐기는 행사가 되어서는 의미가 축소된다. 현지인들과 유학생, 관광객 등이 같이 참여하여 즐기는 행사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한인(한국)의 날 행사가 오클랜드의 중요한 문화상품으로 격상될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노스쇼어 이벤트 센터를 벗어나 수요자(관람객)가 접근하기 쉬운 아오테아 광장 중심으로 진출할 필요가 있다. 아오테아 광장은 뉴질랜드의 중심이며 세계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모든 이벤트는 주관자 중심이 아니라 관람자 중심이 되어야한다. 우리의 민속 명절인 설날, 정월대보름 절기를 맞아 아오테아 광장에서 우리한인들과 다민족 관람객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려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또한 사물놀이 팀이 등장해 현지인들과 어울려 흥겹게 춤추는 장면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일 년 중 가장 날씨가 좋은 시기는 설날과 정월대보름이 들어 있는 2월이니 축제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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