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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암시믄 살아지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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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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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헌 / 호남ㆍ제주본부 기자

   
▲ 4ㆍ3사건 당시 토벌대의 총탄에 턱을 맞은 진아영 할머니는 평생을 무명천으로 턱을 감싼 채 살았다.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 삶터보존회 제공.

제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맞닥뜨릴 때 자주 내뱉는 말이 있다. “전디멍 살암시믄 살아지매.” ‘견디면서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뜻의 제주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목숨만 부지한다면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다는, 자조적인 이 짧은 문장은 제주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내려온 삶의 방식 중 하나였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4ㆍ3사건을 겪은 제주 사람들은 수십년간 정부의 감시와 탄압 때문에 4ㆍ3 피해에 대해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수없이 체념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명천 할머니’의 삶이 그러했다. 4ㆍ3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1949년 1월 제주에는 계엄령이 선포됐고, 군경의 토벌작전은 점점 학살로 번져가면서 도 전역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북제주군(현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에도 군경토벌대가 밀어 닥쳤다. 당시 35세이던 진아영(1914~2004) 할머니는 집 앞에서 토벌대의 총탄에 턱을 맞고 쓰러졌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할머니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할머니는 총상 직후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아픔을 견뎌야 했다. 사라진 턱은 하얀 무명천으로 감싼 채 지냈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55년간 본명 대신 ‘무명천 할머니’로 불리며 죽음보다 더한 기구한 삶을 살아야 했다. 할머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물 한 모금 마실 때도 남들에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만의 언어로 웅얼거릴 뿐이었다. 음식도 제대로 씹지 못해 항상 위장병과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았다.

할머니는 평생 무언가에 쫓기는 불안감 속에서 살았다.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집 앞에 나설 때도 열쇠를 꺼내 현관문을 잠갔다. 집안에 있으면서도 안방문을 또 다른 자물쇠로 채운 채 지냈다. 평생을 혼자 외롭게 살던 할머니는 말년에 2년 넘게 요양원에서 계시다가 2004년 9월 한 많은 삶을 마쳤다. ‘무명천 할머니’는 그 자체로 4ㆍ3의 아픔이었다.

   
▲ [저작권 한국일보]지난 1일 제3회 제주4ㆍ3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제주 제주시 제주칼호텔에서 만난 베트남 퐁니-퐁넛마을 출신 응우옌 티 탄(59ㆍ사진 오른쪽)씨와 동명이인인 하미마을 출신 응우옌 티 탄(62)씨는 이날 4ㆍ3평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김영헌 기자.

지난 1일 제주4ㆍ3평화상 특별상 수상을 위해 제주를 찾은 베트남 퐁니-퐁넛마을 출신 응우옌 티 탄(59)씨와 동명이인인 하미마을 출신 응우옌 티 탄(62)씨가 눈물을 글썽이면 털어놓은 삶도 ‘무명천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이 살던 마을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학살사건의 대표적 피해지역이다.

당시 여덟 살이던 탄(퐁니-퐁넛마을)씨는 왼쪽 옆구리에 총상을 입었고, 지금까지도 후유장애를 앓고 있다. 또 다른 탄(하미마을)씨도 11세때 수류탄이 터지면서 왼쪽 청력을 잃었고, 등과 다리에 파편이 박힌 상처가 낙인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다. 두 사람 다 학살 사건 이후 부모와 가족을 잃은 전쟁고아가 됐고, 친척집 등을 떠돌며 평생 힘든 삶을 살아왔다.

다만 이들이 ‘무명천 할머니’와 다른 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로 활동했던 김복동 할머니처럼 자신들이 겪었던 악몽을 용기를 내서 세상에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과 같이 한국군 학살 피해를 입은 생존자와 희생자 유족 등을 설득해 작성한 청원서를 지난 4일 청와대에 전달했다.

청원서에는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대해 한국 정부가 직접 진상규명하고,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피해회복 조치에 나서달라는 요구가 담겨 있다. 우리가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에 대한 사실 인정과 사과를 요구하는 것처럼, 이들도 한국 정부가 과거 한국군이 베트남의 무고한 민간인에게 저지른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자신들에게 사과를 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탄씨들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는 시간이다. 한국군 학살피해자 대부분 고령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이들에게 서둘러 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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