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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푸틴의 블라디보스토크 시험대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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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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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석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북한 외교의 상징인 특별열차 로드쇼가 북방의 연해주에서 또 펼쳐진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두만강 철교를 넘어 마침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는 것이다. 북한 최고지도자로는 2011년 8월 부친 김정일의 방러 이래 8년 만이고, 2012년 4월 김정은이 권력을 공식 승계한 후 처음이다. 집권 7년 차 김 위원장의 첫 러시아 나들이는 북한의 경로 의존적 외교 관행으로 볼 때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다.

지난 몇 년간 푸틴 정부는 대북 우호관계 과시 차원에서 김 위원장의 방러를 줄곧 요청했지만 평양은 쉽게 응하지 않았다. 대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유익한 지정학적 구도를 형성하기 위해 방러 타이밍을 적절히 조절했고, 그럼으로써 유리한 이익균형과 세력균형을 창출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김정은·푸틴 첫 정상회담은 어떤 전략적 셈법을 담고 있는가.

평양은 전통적 우호세력의 결집과 대미 협상력 제고를 위해 러시아의 위세를 등에 업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숨통을 죄어오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견디기 위한 `산소호흡기`로서 대러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남북, 북·중, 북·미 정상회담에 이은 북·러 정상회담의 성사는 김정은의 한반도 정세 주도권 장악에 기여할 수 있다. 미국과의 핵 담판 좌초가 초래할 수 있는 안보 위협에 대비하는 보험도 들어놔야 한다. 대북 영향력 확보를 둘러싼 중·러의 경쟁구도를 조성해 그 사이에서 다양한 국익을 충족할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조건 및 속도와 관련해 크렘린과 협의하고 지지를 확보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은 크렘린에도 다양한 `기회의 창`을 제공한다. 우크라이나, 이란, 시리아,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파기 문제로 미국과 날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에 북한은 글로벌 반미 연대의 주요 축이다. 그러나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핵심 성원으로서 지구촌의 전략적 안정화를 위해 미국과 함께 북한의 비핵화를 강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북핵 문제의 지속은 한반도 및 동북아의 긴장을 항구화함으로써 푸틴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시베리아 극동지역 개발에 중대한 차질을 초래한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소외를 방지하는 것도 시급하다. 러시아는 한때 한반도에서 치욕적인 `패싱` 트라우마를 경험한 적이 있다. 북한 정권의 탄생과 발전의 결정적 후원자로서 한반도 문제의 전통적 이해당사자였던 자국이 1997년 성립된 한반도 4자회담에서 배제된 것이다. 루스키들의 대국적 자존심에 지대한 손상을 가한 일종의 외교 참사였다. 보리스 옐친 정부의 대북관계 단절과 친서울노선이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로화시켰다는 점을 명료히 인식한 크렘린 전략가들이 이런 우(愚)를 다시 범할 리 없다. 6차례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평양을 껴안고 유엔 대북제재의 최소한의 이행자로 머물러 있는 이유다. 이렇듯 북·러 간 동상이몽적 이해관계 수렴은 양국의 결착을 요구한다.

북·미 간 2차 핵 협상 결렬이 김 위원장의 방러를 추동한 측면이 강하다. 그럼에도 지정학적 맥락에서 푸틴·김정은 회동은 한반도 정세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후견-피후견 관계의 관성이 작동하는 북·러 간 유대 강화가 일정 수준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줄여주고, 동시에 평양에 대한 베이징의 과도한 영향력 독점도 억제할 수 있다. 또 교착 상태에 처한 북·미 간 핵 협상에 진전의 실마리를 제공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를 앞당기는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 철도·가스·전력망 연결 등 그동안 동결된 남·북·러 삼각 협력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주고, 한반도 신경제 구상의 활성화와 신북방정책에도 탄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기대가 충족된다면 블라디보스토크 북·러 정상회담은 감히 청하지는 못하나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뜻의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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