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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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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동베를린의 중심을 길게 지르는 카를 마르크스 거리가 있다. 전쟁으로 페허가 된 시가지가 복구되면서 시원스럽게 트인 거리의 양쪽에는 스탈린시대의 사회주의적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따른 주상복합형 아파트들이 들어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나도 이 거리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노동자의 궁전’이라고 불렸던, 중후한 감을 주는 이 아파트들은 동독 사회주의의 대표적인 건축물의 하나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바로 이 건물에 사는 주민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뛰는 월세에 항의해 창밖으로 ‘우리와 함께 항의하자! 투기에 반대하는 세입자행동’이라고 쓰여 있는 큰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이를 계기로 베를린은 물론 전국적으로 ‘지불할 수 있는 주거’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30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소유한 대형 부동산업체의 아파트를 베를린시가 공용수용(公用收用)해 집세 상승을 멈추게 해야 한다는 요구조건을 내건 국민청원운동이 시작되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54.8%의 베를린 시민이 이에 찬성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요구조건을 일각에서는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하지만 “재산권은 의무를 수반한다. 그의 행사는 동시에 공공복리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독일의 ‘기본법’ 14조 2항을 들어 찬성하는 쪽에서는 위헌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2018년 초에 제안되었으나 무산된 문재인 정부의 헌법개정안에 등장했던 ‘토지의 공공성’을 둘러싼 논쟁도 비슷한 맥락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를 반대했던 쪽은 토지의 공개념을 1946년 북한의 토지개혁과 연결시켜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또 토지공개념으로는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위에 언급된 내용을 담고 있는 기본법 위에 서있는 독일은 사회주의국가인가? 철학자 하이데거는 ‘짓고, 살고, 생각하기’라는 강연에서 집을 짓는 것(Bauen)과 거주하는 것(Wohnen)은 본래 같은 어원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토지 위에 집을 짓고 그 속에 살기 마련인데 어떻게 이를 구별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 조건 중 하나인 주거 문제는 농경사회 때와는 달리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무척 복잡해졌다. 또 각 나라의 역사적인 배경에 따라 사회성원 간에도 특이한 갈등을 낳는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전세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만 있기 때문에 외국어로 번역하기 힘든 임대 제도다. 영국에서는 주(週) 단위로 집세를 지불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밖의 나라에서는 한 달 단위의 월세가 보통이다. 물론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전세 들어 사는 사람은 목돈이 어느 정도 있기에 상대적인 안도감을 얻을 수 있고, 전세를 놓는 사람은 이를 재투자의 밑천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투기 문제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갈등구조 속에는 분명히 이 전세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과도한 인구집중과 전통적인 학력중심의 사고가 결합되어 낳은 학군(學群)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떠나서 주거 문제를 논의하기 힘들다. 학군이 집값을 올리고, 장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직에 지명되었으나 청문회에서 위장전입 문제로 낙마한 경우가 지금까지 한둘이 아니다. 해외로 이민 와서도 학군 문제는 여전히 초미의 관심사로 남는다. 10여년 전 뉴욕에 들렀을 때 한국 교포들이 이른바 학군이 좋다는 지역의 공립학교에 자녀들의 입학신청을 하기 위해 교문 앞에서 밤샘하는 모습도 보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나라든지 교육환경은 주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주거조건이 학교의 서열화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따라서 학교교육의 평준화를 어렵게 만드는 주거와 소득의 불평등을 장기적으로 해소하는 사회정책은 필수적인 선결과제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주택정책은 높은 복지수준을 달성한 독일에서조차 사회정책의 어려운 과제 중 하나로 남아있다. 가령 저렴한 공공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고, 투기성 부동산자금의 흐름을 차단하고, 1가구 1주택의 원칙을 철저히 하기 위해서 자기가 살고 있던 집을 10년 안에 팔 경우에는 투기세도 부과하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2017년 서울의 자택소유율은 49.2%였는데 베를린의 비율은 겨우 15%였다. 서울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 집을 장만해야 하는 강박감에 쫓기지만 베를린에서는 그렇지 않다. 경제적 여유는 있지만 일생을 월세 들어 사는 사람을 주위에서 자주 보게 된다. ‘부동산자본주의’라고까지 불릴 정도인 한국 사회에서 세입자를 위한 법적인 보호막이 허술한 까닭에 생긴 집 없는 서러움, 노년복지구조의 취약성, 주택이 갖는 과시적 소비효과 등이 부동산의 기형적인 소유구조를 만들었다.

얼마 전에는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했다. 다주택 보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정서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자산의 비중이 금융자산의 그것에 비해 턱없이 큰 한국적 상황 때문에 부동산 문제는 사회적으로 극히 민감한 반응을 일으킨다. 과도한 주식 보유로 문제가 된 한 여성 헌법재판관의 임명을 두고 또다시 여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불법적인 방법에 의한 주식 취득이 아니라면 다주택 보유와는 성격이 다르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지멜은 <공간의 사회학>에서 공간의 배타성을 지적하면서 부동산을 그 예로 들었다. 같은 공간 속에 똑같은 주택 둘이 함께 있을 수 없고,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 들어 설 수 있는 부동산의 공급량은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또 학군 문제에서 보았듯이 부동산은 사회적 관계에서도 배타적으로 작용한다. 부동산이 지니는 이러한 배타성에 비하면 주식의 그것은 크지 않다. 주식은 보유할 수도, 또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수불가결한 삶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한 세기 전에 밑바탕 인생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던 민중화가이자 사진작가인 칠레는 ‘도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똑같이 집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라는 말로 당시의 비참한 주거상황을 비판했다. 서울의 쪽방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가 남겼던 이 말을 떠올리게 된다. 

주소나 주택에 쓰이는 한자 ‘머무를’ 주(住)는 본래 촛불을 밝히고 있는 사람을 형상했다. 계몽철학자 헤르더도 ‘사람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생활하는 데 따라서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살기 마련이다’라고 지적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이 주인처럼 살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주거의 본성임을 강조한다.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2008년의 재정위기도 실은 부동산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런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소식을 최근에 들으며 부동산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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