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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국민 코리안'의 탄생?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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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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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 문화부 차장

고려인·조선족·자이니치… 나라 빼앗겨 생긴 이름들
이젠 국민마저 내편 네편… 모든 '코리안' 통합은 요원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달 전 카자흐스탄 출장 중 여러 고려인을 취재하면서 그런 생각이 굳어졌다. 고려인은 중앙아시아 동포들이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일제 압제를 피해 러시아 연해주에서 살던 고려인 17만명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명령으로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에 흩어졌다. 현재 우즈베키스탄 19만명, 카자흐스탄 10만명 등 약 55만명이 살고 있다. 1910년 나라 망하지 않고 백성 보호하는 튼튼한 국가를 만들었다면 그 후손이 머나먼 땅에서 태어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자칫하면 '최고 존엄' 떠받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람으로 살 수도 있었다. 어머니가 평안북도 영변 출신이다. 6·25전쟁 중 외할아버지가 자식들 데리고 남으로 피란하지 않았다면 '조선 사람'이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압록강 넘어 만주 땅에 오갔다던 할아버지가 시인 윤동주 살던 용정이나 소설가 김학철처럼 연길에 정착했다면 지금 중국 조선족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하와이에 이주했다면? 강제징용으로 일본 땅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미주 한인(재미 동포)이나 자이니치(재일 교포)로 살았을 수도 있다. 이러니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일은 기적일 수밖에.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관통한 모든 한국인이 다 그렇다. 100여 년 전 제대로 된 나라 만들지 못한 까닭에 모든 개인이 역사의 파도에 휩쓸렸다.

한국인·조선인·조선족·고려인·한인·자이니치 구별은 그러므로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다. 영어로는 모두 '코리안'으로 부른다. '사우스 코리안' '노스 코리안'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구별하더라도 다 같은 '코리안'이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이들을 아우르는 말이 없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이 저서 '한국 사람 만들기'에서 지적했다. "유대인(Jew)들은 어디에 살든 유대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다르다. '코리안'에 해당하는 한국말이 없다. '한국 사람'은 진행형이다."

100년 전 3·1운동으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과제는 독립이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의 과제는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 즉 국민국가 만들기였다. 대한민국은 분단·전쟁 같은 고난을 딛고 산업화·민주화를 거쳐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 나라로 발전했다. 이제 대한민국의 과제는 갈라지고 찢긴 '코리안'을 포용·통합하고 이를 더 큰 도약의 자산으로 삼는 '코리안 빌딩(Korean building)'일 것이다.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낸 책 '통일의 시대가 오는가'에서 통일 후 국호를 '우리나라'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코리안 빌딩'은 '우리나라 사람 만들기'이다. 이를 위해 조 교수는 "우선 대한민국을 좋은 나라로 만들어 우리나라가 도달해야 할 이상에 근접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껏 벌어진 일을 보면 모든 '코리안'을 포용·통합하는 일은 요원한 일로 느껴진다. '관제 민족주의'(최장집 교수)로 대한민국 안에서도 내 편 네 편 가르는 형편이다. '사우스 코리안'조차 '레프트 코리안'과 '라이트 코리안'으로 갈라 지고 '국민'과 '비(非)국민'으로 나뉠 판이다. '비국민 코리안'은 100년 전처럼 압제를 피해 나라를 떠날지도 모른다.

아직 늦지 않았다. 오늘 귀국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엊그제 카자흐스탄에서 독립운동가 유해를 봉환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이제는 편 가르기를 넘어 '코리안 빌딩'이라는 커다란 통합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지난 세기의 잘못을 바로잡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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