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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의 땅에서 오히려 빛난 아르메니아 대성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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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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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 한양대 특훈교수·중동학

이슬람 시아파 중심지에 / 400년 역사 반크 대성당
사파비 제국 번영의 힘도 / 공존·상생임을 확인시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란의 이스파한은 ‘네스페 자한(Nesf-e Jahan)’으로 불린다. ‘세상의 절반’이란 뜻이다. 17세기 이스파한은 사파비 제국(1501~1736)의 수도로서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였다. 인구 100만에 163개의 모스크, 48곳의 학교, 대상들을 위한 1800여 개의 여관, 273곳에 공중목욕탕을 가졌다. 그때 조성된 폴로 경기장과 이맘 광장은 지금도 크렘린과 천안문 광장에 버금가는 큰 규모를 자랑한다. 사파비는 인도의 무굴과 오스만이라는 대제국들과 당당히 경쟁하면서 동서 실크로드 교역으로 번영을 누렸다. 문화적으로는 소수 종파인 이슬람교 시아파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잃어버린 페르시아 문화를 회복하고자 했다. 오늘날 이란이 시아파가 된 배경이다.

번영의 원천은 종교적 관용과 유대인과 아르메니아인 같은 이교도 인재들의 적극적인 등용이었다. 유대인은 멜라라 불리는 공동체에서 종교적 자율과 행정적 자치를 누리면서 엘리트 관료로 출세했다. 한편 아르메니아인들은 오랜 실크로드 교역 경험과 국제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제국의 상업적 부를 창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당연히 그들의 문화적 자치와 종교 생활도 철저히 보장되었다.

당시 아르메니아 상인들은 국제시장의 큰손으로 유럽 상인들의 사각지대인 중앙아시아나 소아시아까지 사업영역을 넓혔다. 당시로선 첨단 비즈니스 기법이던 신용 담보나 환어음 거래를 활성화하기도 했다. 비엔나 전투 이후 터키 커피의 체계적 공급과 거래를 통해 유럽 카페문화를 견인했던 주역들도 아르메니아 상인들이었다. 그렇지만 전략적 요충지이자 비옥한 젖줄인 아르메니아 영토를 두고 오스만 제국과 끊임없는 전쟁에 휘말린 샤 압바스 1세(1587~1629)는 수십만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을 격전지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 이스파한의 졸파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이때 세워진 아르메니아 공동체의 구심체가 바로 1606년에 건립된 반크 대성당이다. 이슬람의 땅에서 400년이나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의 영성과 역사적 부침을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 1606년 이란 이스파한에 건립된 아르메니아 반크 대성당. [사진 이희수 교수]

반크 대성당은 이슬람교 모스크를 개조한 돔형 건물이다. 꼭대기에 자그마한 십자가가 꽂혀있고 근엄한 종탑이 연이어 배치되었다. 성당 내부는 모스크 구도에 파란색과 황금색을 혼합한 전형적인 페르시아 스타일로 장식하였다. 벽면에는 르네상스풍으로 천지창조와 최후의 만찬 그리고 성 그레고리의 순교 장면 등을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묘사해 놓았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301년 로마에 앞서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화했다고 주창하면서 정통 기독교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이들은 성화인 이콘을 중시해 이콘과 직접 입맞춤을 하고 손으로 쓰다듬고 그 손을 가슴에 모아 십자가를 그린다. 가슴에 긋는 십자가가 가톨릭과는 조금 다르다. 머리, 가슴, 오른쪽 어깨, 왼쪽 어깨 순이다. 다른 기독교와는 달리 모두가 서서 예배에 참석한다. 악기를 동원하지 않고 성가를 합창한다. 오히려 더 은혜로워 보인다.

교회 정원에 마련된 아르메니아 박물관에는 기독교 전파나 아르메니아인 박해사에 관한 소중한 기억들이 그득하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다이아몬드 펜으로 성경 구절을 새겨 넣은 머리카락과 세계에서 가장 작은 14쪽의 성경책이다. 현미경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희귀품들로 아르메니아인들의 섬세한 손재주를 말해주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실크로드 교통의 남북축이 교차하는 요지에 있어 예부터 강대국들의 틈에서 숱한 이산의 비극을 겪어왔다. 하지만 이런 역경이 세계 곳곳을 넘나들며 국제 상인으로서 진취적 기질을 쌓는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스파한을 중심으로 이란에는 수십만 명의 아르메니아인들이 13개의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낯선 이슬람의 땅에서 살아간다. 일반 이란인들보다 훨씬 높은 경제적 삶을 누리고 2명의 대표를 국회에 보내면서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신앙심을 잃지 않고 있다. 이웃 터키가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야기했던 것과는 달리 이슬람 시아파의 심장부 이란에서 아르메니아 정신의 숨결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은 또 다른 공존의 발견이었다. 이스파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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