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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로 독트린은 살아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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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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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찬제 / 국제·기획 에디터

   
 

“1800년 이후 미군은 수천 번 중남미에 개입했으며, 수십 차례 점령했다.” 미국 템플대 중남미 전문 역사학자 앨런 맥퍼슨 교수의 주장이다. 미 대외정책 비판가이자 작가인 윌리엄 블룸은 1995년 쓴 <킬링 호프>에서 1945년 이후 미국이 ‘정권 교체’를 시도한 경우가 55차례 있었다고 했다. 미 여성 평화주의 단체 ‘코드핑크’ 공동설립자 미디아 벤저민은 그 후 13차례 더 있었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정권 교체 시도는 적어도 68건이나 된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중남미 국가는 얼마나 될까. 에콰도르, 브라질, 페루,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우루과이, 칠레, 볼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그레나다, 수리남, 니카라과,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아이티, 온두라스, 베네수엘라 등 19개국이다. 전체 33개국의 절반을 넘는다. ‘중남미는 뒷마당’이라는 미국의 주장이 결코 빈말이 아닌 셈이다.

미국이 중남미를 자신의 뒷마당으로 여기는 근거가 ‘먼로 독트린’이다. 1823년 12월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밝힌 미국 대외정책의 대원칙이다. 당시에는 유럽 식민주의자로부터 미주 대륙을 보호한다는 데 방점이 찍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의 중남미 개입을 노골적으로 정당화하는 명분이 됐다. 중남미에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좌파 정권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개 ‘침공-점령-정권교체’ 단계를 밟는다. 소극적 고립주의를 표방해 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지원한 쿠바 피그만 침공 58주년이던 지난 4월17일 먼로 독트린의 부활을 공식 선언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먼로 독트린은 살아 있다”고 말했다. 아니, 먼로 독트린이 종식된 적이 있었던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3년 11월 존 케리 국무장관은 “먼로 독트린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바 있다. 물론 말뿐이었지만. 5년반 만에 부활한 트럼프의 먼로 독트린은 더 강력해졌다. 타깃이 쿠바에서 니카라과와 베네수엘라로 확대됐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먼로 독트린의 최신판이다.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쫓아내기 위해 전통적인 문법을 따르고 있다. 우선 독재자 낙인찍기다. 혹독한 경제제재도 병행된다. 경제 위기로 정국 혼란을 초래해 내란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어 꼭두각시를 내세운다. 후안 과이도다. 올해 1월 초만 해도 무명 정치인이던 과이도는 1월23일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면서 세계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이틀 뒤에는 그를 지원·조종할 특사를 내세웠다. 엘리엇 에이브럼스다. 레이건 및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중남미 정책에 깊숙이 개입한 네오콘이다. 특히 니카라과 좌익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한 이란-콘트라 사건에 개입해 유죄를 받을 만큼 미 공작정치의 대표 인물이다. 그 사이에 가짜뉴스도 퍼뜨렸다. “마두로는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위기는 마두로의 사회주의 정책 탓이다.” 모든 것이 준비됐다. 쿠데타 시도만 남았다. 과이도는 지난 4월30일 이런 각본에 따라 쿠데타를 시도했다. ‘러시아가 마두로의 쿠바 망명을 막고 있다’ ‘베네수엘라 군부가 마두로를 버렸다’ ‘쿠데타는 성공적이다’ 같은 가짜뉴스도 동원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트윗으로 쿠데타를 옹호했다. 하지만 군부 지지를 받지 못한 쿠데타는 실패했다.

흔히 베네수엘라 혼란 원인으로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든다. 하지만 유가 하락과 미국의 경제제재 탓이라는 분석도 많다. 미 컬럼비아대 제프리 색스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8월 이후 베네수엘라 국민 4만여명이 미국의 경제제재에 따른 식량 및 의료품 부족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경제제재는 베네수엘라 경제를 망가뜨려 정권교체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무익하고 비정하고 불법적이고 실패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에서 빈곤퇴치의 전도사로 각광받는 색스 교수의 보고서는 미 주류 및 국내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미 주류 언론이 국익을 앞세워 외면하고, 이에 의존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 관행이 빚은, 어이없는 촌극이다.

중남미 대표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미국이 어떤 나라를 구할 때마다 미국은 그 나라를 정신병원이나 무덤으로 바꾼다”고 했다. 먼로 독트린이라는 유령은 지난 200년 동안 중남미를 떠돌며 주민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미국이 먼로 독트린을 강조하는 이유는 국익과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중남미를 자신의 뒷마당으로 여기는 미국의 오만이 절대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지금, 미국은 여전히 베네수엘라에 군사 개입할 명분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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