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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카펫 위에서 외치는 '독재타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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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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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용 / 논설위원

   
▲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4월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멈춤), 국민이 심판합니다!’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며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운명의 장난’(a quirk of fate)은 셰익스피어의 단골 소재다. 햄릿은 가증스러운 운명의 돌팔매와 맞서 싸웠고,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극적으로 사랑을 마무리했다. 옛날 변사(辯士)들은 “아 운명의 장난인가, 장난의 운명인가”라고 비틀어 과장했고, 사람들은 그게 뭐라고 깔깔깔 웃었다. 이해찬과 황교안, 이인영과 나경원은 동시대를 데칼코마니처럼 정반대로 살았다. 네 사람이 30년이 지나 정치의 정중앙에서 맞닥뜨린 건 마치 운명의 장난을 보는 것 같다.

   
▲ 박래용 논설위원

이해찬(67)은 1970~80년대 서울대 학생운동과 재야 민주화운동의 핵심 브레인이었다. 74년 민청학련사건, 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풀려나기를 되풀이했다. 80년 6월 안동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당시 어머니와 아내가 두 살배기 딸을 데리고 면회를 온 뒤 돌아가는 세 여인의 모습을 보고 미안함과 비통함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황교안(62)은 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83년부터 검사를 시작했다. 주로 공안검사를 지내고 공안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해설>을 저술해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 황교안은 지금 투사로 변했다. 입만 열면 문재인 정부를 독재라고 한다. 그냥 독재도 아니고 좌파독재다. 기득권 세력은 3당 합당 이후 이전까지의 민주 대 독재 구도를 진보 대 보수, 좌파 대 우파 구도로 바꾸었다. 진보는 친북이고 반국가로 규정하는 식이다. 빨갱이 낙인은 반대세력을 무력화하는 데 백전백승, 언제나 잘 먹힌다.

비판은 자유다. 하지만 황교안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 각 부를 통할한다. 박근혜 청와대는 대통령부터 비서실장, 수석, 비서관들이 헌정유린 국정농단 부정부패 혐의로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행정부는 시민을 둘로 쪼개 한쪽을 짓누르다 스스로 쑥대밭이 됐다. 총리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깨어 있었다면 나라가 그토록 결딴나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총리 황교안은 사전에 국정농단을 막지 못했을 뿐 아니라 사후에도 덮고 비호하는 데 급급했다.

제1야당 대표가 된 황교안은 ‘박근혜 정부’를 그대로 한국당에 재현했다. 최측근부터 당 사무처의 주요 국·실장까지 대부분 박근혜 청와대 아니면 총리실 출신이다. 이들이 당과 대표의 전략을 짜고 메시지를 만드니 매일 나오는 메시지가 현 정부에 대한 저주와 악담, 폭언이다. 당내에서조차 “당이 바뀌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하는데, 박근혜 정부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황교안은 ‘박근혜의 아바타’를 자임하고 있다. 그래서 여권에선 홍준표에 이어 또 야당복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황교안이 나서면 나설수록 민주 대 반민주, 친박 대 촛불 구도가 자연히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인영(55)은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쓰러진 87년 6월 전대협의 전신인 서대협(서울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이었다. 거리 위 학생들의 외침은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고 군부독재하의 헌법을 바꿔냈다. 대통령 직선제, 지방자치 부활, 헌법재판소 도입이 그 산물이다. 나경원(56)은 학원 이사장의 딸이다. 서울대 법대 82학번이지만 사법시험은 30세가 되던 92년 합격했다. 95년 판사로 임용돼 7년6개월간 판사로 재직했다.

현대사 고비마다 질식할 것만 같았던 압제의 사슬이 저절로 풀렸던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화의 공기, 민주화의 햇살은 20대 초반 꽃다운 청춘을 바친 이들의 혼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에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분들께 우리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상식이고 도리다. 30년이 지난 지금 황교안이 임종석을 향해 내가 주임검사였다고 자랑할 줄은 몰랐다. 나경원이 독재타도·헌법수호를 외치며 바닥에 드러누울 줄은 몰랐다. 황교안과 나경원의 독재타도 투쟁은 끌려갈 일도 없고, 고문당할 일도 없다. 민주화 투쟁의 과실인 자유의 단맛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군사독재 타도를 위해 싸운 시민·학생·노동자들을 잡아 가둔 이들이 외치는 독재타도란 ‘장난의 운명’만큼이나 희극적이다.

이들의 독재타도는 지지층은 결집시켰을지 몰라도 딱 거기까지다. 미래도 확장성도 없다. 서구의 보수정당은 약자를 배려하고 분배를 중시하는 온정적 보수주의로 당의 외연을 넓혀 집권에 성공했다. 뭔가를 지키고자 한다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변해야 한다고 했다. 어느 한 계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당이 아니라 모두의 정당임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지금 황교안과 나경원은 레드카펫 위에서 누구를 위해 싸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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