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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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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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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경 / 재미 언론인>


환경(環境)에 대한 개념은 동서양이 똑 같다. ‘환경’이라는 말의 출전은 원사(元史) ‘여궐전(餘闕傳)’에 나오는 “둥글게 경계 지어 보채를 만든다(環境作堡砦)”라는 구절로서, ‘보채’는 삶의 터전, 그래서 ‘환경’이 ‘삶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지구를 환구(環球)라고도 한다. 영어 ‘environment’의 뿌리 또한 ‘안’을 뜻하는 접두사 ‘en-’에 ‘원’을 뜻하는 ‘viron’이 붙은 라틴어 ‘environ’으로서 ‘환경’의 의미와 딱 맞아떨어진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찰스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을 제기했던 19세기 프랑스 생물학자 라마르크도 그걸 확신했다. 라마르크의 진화설은 “개체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는 반면 자주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용불용설’과 “환경적응 과정에서 얻은 형질도 유전된다”는 ‘획득형질 유전설’로 요약되는데, 그간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에 가려 인정받지 못했으나, 21세기 들어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주목 받기 시작한 후성유전학에서는 메틸기 같은 생화학 물질이 환경영향에 따라 유전자 작동방식에 변화를 일으키고 유전될 수 있다는 가설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전 세계 113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The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he Human Environment)에서도 그 점을 인정하여 “인간은 환경의 창조물인 동시에 환경의 형성자”라고 선언했었다.

한자문화권에서도 오래 전부터 인간이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인정했었다. 귤화위지(橘化爲枳),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영왕이 제나라 재상 안자의 기를 꺾을 요량으로 도둑질을 하다가 붙들린 제나라 사람을 가리키며 “제나라 사람들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느냐?”고 비아냥거리자 “회남의 귤을 회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됩니다. 토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서 살 때는 도둑질이 뭔지도 몰랐는데 저 사람이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니 초나라의 풍토가 나쁜 것 같습니다”라고 대꾸하여 영왕의 코를 납작하게 눌렀다는 이야기가 ‘회남자(淮南子)’와 ‘안자춘추(晏子春秋)’ 등에 실려 있다. 봉생마중 부부이직(蓬生麻中 不扶而直) 백사재열 여지구흑(白沙在涅 與之俱黑), 마 가운데의 쑥은 붙들어주지 않아도 곧게 자라고 하얀 모래도 진흙 속에 있으면 함께 검어진다는 말도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아이비리그에 한인학생들의 돌풍이 분다? 롱아일랜드 스미스타운 이스트고교에 재학 중인 조수진이 프린스턴 등 8개 명문대에 합격하고, 예일대 졸업반 정유진이 2009년 졸업생 공동대표를 맡고, 한인 2세 전광률이 하버드 경영대학원 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고 해서 본국 언론들까지 나서서 “한국인의 우수성이 입증됐다”느니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들이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현실을 까먹은 것 같아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들이 한국에서도 그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어렵게 공부한 전광률이 한국에서도 똑 같은 노력으로 똑 같이 성취할 수 있었을까? 미국이라는 환경을 무시한 채 ‘한국계’만 강조하는 치졸한 에쓰노센트리즘에 눈이 흘겨진다.

미국인에게 입양시킨 자식이 출세하자 갑자기 나타나 부모 행세하려는 사람들을 보는 듯하다.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 때 “범인 조승희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으로서 그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던 미국인들 보기가 쑥스럽다. 한인 1.5세나 2세들이 ‘나는 한국인’이라고 고집할 경우 절대로 미 주류사회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남의 나라에 이민 와서 사는 주제에 ‘우리 한국인’이라는 집단주의적인 연대로 자기 존재 드러내려는 낯간지러운 짓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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